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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추억] LG가문 맏며느리 ‘그림자 내조’ 66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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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LG그룹이 고(故) 하정임 여사<右>가 작고한 뒤 언론사에 제공한 사진. 부군인 구자경 명예회장<左>은 일간지에 실린 이 사진을 보고 "이런 사진이 있는 줄 몰랐다"며 감회에 젖었다. 장남인 구본무 회장도 이 사진을 보고 많은 눈물을 흘렸다.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의 부인이자 구본무 회장의 어머니인 하정임 여사가 9일 오전 서울대병원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85세. 고인은 슬하에 장남인 구 회장 이외에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 딸인 구훤미·미정씨 등 4남2녀를 뒀다. 1924년 경남 진양군에서 선비인 하순봉씨의 3남3녀 중 장녀로 태어난 고인은 열아홉 살이던 42년 이웃 마을에 살던 구 명예회장과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의 할아버지가 ‘예의범절을 제대로 배우고 한문에도 뛰어난 소양을 갖춘’ 고인을 종가 맏며느리로 점 찍었다는 후문이다.

 LG가는 엄격한 유교 가풍 때문에 다른 그룹에 비해 딸이나 며느리의 경영활동이 드물다. 고인 역시 구 명예회장과 66년 동안 해로하면서도 외부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 집안 여자들끼리 자주 만나는 것까지 탐탁치 않게 여길 정도로 일생을 조용한 내조자로만 보냈다고 한다. 구 명예회장의 아내 사랑은 각별했다. 2001년 구 명예회장이 희수(77회 생일)연에서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말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화다. 그는 이 자리에서 희수를 1년 먼저 맞은 아내에게 “평생 가슴에 품어오면서도 차마 못했던 고백을 하고 나니 이제 가슴이 후련하다”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구 명예회장은 95년 초 구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면서 아내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는 “집사람이 나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으니 앞으로 2년 동안은 전국의 사찰과 섬을 함께 돌아보겠다”고도 했다.

 이런 모습을 지켜봐 온 장남인 구 회장은 2002년 구 명예회장과 하 여사의 결혼 60주년을 기념하는 회혼례에서 “두 분이 평생 해로하시는 부부상이야말로 평생 간직하며 본받아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이며, 발인은 12일 오전 7시다. 장지는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 해월리. 02-2072-2016.

안혜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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