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시평>황금알 낳는 교과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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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어느 출판사라면 다 아는 명문(名門)출판사 사장은 이렇게 한탄했다.『30년간 5백~6백권의 단행본을 출간했지만 연간 매출액은 5억~6억원이다.자습서를 내는 학습 출판사의 영어 교과서한 종 매출액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이 한탄이 바로우리 출판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교과서 출판의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지적하는 소리라고 생각한다.
70년대 교과서 파동으로 유명 출판사 사장들이 구속된 사건도있었고,80년대에도 탈락한 교재 집필자들이 심의에 항의해 법정고소를 한 적도 있다.또 5년마다 부는 검인정 도서 한철 태풍이 지나가면 온갖 소문이 꼬리를 문다.특히 영어 .수학의 경우교과서로 채택되기만 하면 평생을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번다는황당한 소문은 예나 지금이나 그치지 않고 나돈다.
왜 이런 소문과 억측이 나도는가.교과서 심의 과정이나 공급방식에 그만큼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다.지난주 교육부장관이 올해 주요 업무를 보고하는 자리에서 교과서를 전면 개편하고 심의방식도 대폭 바꾸겠다는 발표를 했다.여러 교육 개혁안 중에서 가장긴요하고 절실한 문제가 이제서야 제기되었다.늦었지만 지금이라도개편의 방향이 올바르게 전개되기 위해 다음 몇가지 사항이 고려되기를 기대한다.
현행 교과서는 국정인 1종과 검정인 2종,인정인 3종으로 나뉜다.국어.국사 교과서가 1종에 속하고,영어.수학등이 2종 도서며,3종 인정도서는 시도 교육감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채택되는 도서다.
문제는 2종 검정 도서다.
중학교 5종,고등학교 8종으로 제한되어 있다.
중학 1년용 영어 교과서가 채택되었다고 하자.전국 중1년생 60만명에게 교과서가 배포되고 그중 5분의 1을 무조건 판매대금으로 잡는다.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교과서에 그림자처럼 따라붙는게 자습서다.5천원 전후의 자습서가 60만명에게 보급되고그중 5분의 1을 한 출판사의 매출액으로 잡는다면 6억원이다.
여기에 교과서 판매대금을 합하면 앞의 출판사 사장의 한탄이 전혀 틀린 소리가 아니라는 계산이 나온다.물론 이런 계산이 실제와는 거리가 있겠지만 가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할만하지 않은가.여기서 우리는 현행 교과서 검정방식에 분명 중대한 문제점이있음을 자연스레 알게된다.
첫째,어째서 교육의 기본이고 모범이 돼야할 교과서가 황금알을낳는 거위고 심의와 배포과정이 언제나 밀실에서 진행돼 마치 비리와 부정의 온상처럼 비쳐지게 방침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왜 굳이 검정도서를 5종 또는 8종으로 제한해 몇몇 출판사에만 한정되는 독과점(獨寡占)을 자초했느냐는 점이다.세번째문제점은 어째서 교육의 기본이라 할 교과과정 개편이 검정 교과서의 개편과 동시에 이뤄지느냐는 점이다.그러나 이런 문제가 제기된지 오래인데도 검정 교과서 제도를 전면 개편한다고 발표만 했지 결과는 지금껏 그대로였다.
교과서 개편의 분명한 방향은 두가지다.첫째가 심의의 기본 방침을 바꾸는 일이다.우선 5종,8종의 기본 제한을 풀어야 한다.1등과 5등의 차이가 무엇인지 기준 자체가 불분명하고 불확실하다.수십종 신청도서중 1등에서 5등까지 구별할 능력이 과연 누구에게 있느냐는 의문이 언제나 제기될 수 있다.따라서 채택여부를 따질게 아니라 교과서로서의 자질을 갖추었느냐,아니냐를 판가름하면 된다.모자라면 이 부분을 손질하고 저 부분은 잘못되었다는 지적만 하면 된다.또 5년에 한 번씩 심의할게 아니라 해마다 해야 한다.이런 방식이 별난게 아니라 일본(日本)을 비롯한 선진 여러나라의 공통된 교과서 제작방식이다.
***자습서 왜 따로인가 그다음 언제나 말썽의 소지가 되는 자습서를 따로 제작할 게 아니다.교과서 안에 포함시켜 학습 심도(深度)를 높여주는 기능을 교과서 한권으로 할 수 있게 해야한다.교과서.자습서가 따로 있으면 돈의 부담도 크지만 교사에 대한 권위도 사라진다.교사가 자습서보다 못하다는 심리가 학생들에게 심어지면서 교사의 권위가 자습서의 권위를 따라가지 못한다. 교육개혁은 교육의 기본인 교과서를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을 바꾸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교과서 출판에 대한 황당한 욕심과 의혹의 눈길을 그냥둔채 교육개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연목구어(緣木求魚)식 허황한 발상 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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