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자동차100년사>2.기술력과 국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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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영국 런던 서북쪽 뉴타운市에 있는 대규모 해군기지가 일본기업에팔린다는 뉴스가 1주일전에 있었다.다음날 日 닛산 자동차는 영국 현지공장에서 자동차 1백만대 생산을 돌파했다고 발표했다.』역사상 단 한번도 전쟁에서 져본 적이 없는 영국이 지금은 굴욕적인 「산업패전국」이 됐음을 상징하는 얘기들이다.
1852년 英 왕립위원회의 라이온 프레이페노 박사는 그의 저서 「대륙의 공업교육」에서 『이 상태로 가다가는 기술교육.훈련.국가경쟁력등 모든 면에서 경쟁상대인 독일에 뒤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 경고는 그후 전개되는 자동차 기술 경쟁에서,또 기술패권이 독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독일이 기술패권국으로 대두하고,특히 독보적인 자동차기술을 확보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일본 게이오(慶應)大 야쿠시지 다이죠(藥師寺泰藏)교수는 저서『테크노 헤게모니-국가는 기술로 흥하고,망한다』에서 이를 간단히 설명하고 있다.
우선은 16세기중반께 위그노(프랑스 신교도)들의 역할을 들 수있다.이들은 프랑스의 경제.문화.기술을 장악했던 사회 상층 그룹으로서 프랑스의 종교혁명에서 패배해 영국.독일등지로 쫓겨갔다. 영국에 들어간 위그노들은 산업혁명의 주도자로 역할을 하게된다.그러나 최초에는 이들이 할 일이 있었지만 이미 산업기반이형성돼있던 영국에서는 본토인들과 완전히 동화돼버렸다.
반면 독일로 들어간 위그노들은 모직물기술을 필두로 기술이전에힘쓰게 된다.독일은 통일국가도 아니었고 사회기반도 없었기에 이들의 독보적인 위치는 상당기간 계속되면서 염료.화학산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독일이 발명한 가솔린엔진,즉 내연 기관은 영국이발명한 증기기관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있다.독일은 증기기관을설치할 자본과 사회적 인프라가 없었기 때문에 대체기관으로 내연기관을 개발한 것이다.증기기관은 급수와 배수의 컨트롤이 필요한물(水)시설이 필요해 도시의 상 하수도시설의 완비가 급선무인데당시 독일로서는 이러한 시설을 갖추는 게 무리였다.
스웨덴의 존 에릭슨,프랑스의 에첸 레놀등 각국 엔진기술자들의노하우를 빨리 소화한 독일은 니콜라스 오토가 알콜을 이용한 4사이클 엔진을 개발함으로써 자동차산업사의 첫 장을 열었다.
1864년 독일 쾰른에 세계 최초의 엔진 양산공장이 건설됐다.영국의 크로슬레 형제가 이 오토엔진의 제조라이선스를 취득해 1869년부터 맨체스터에서 양산에 들어갔다.산업혁명 종주국인 영국이 독일에 기술패권을 내주게 된 것이다.
東京=郭在源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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