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인터뷰>별난 의사 金貞壹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소설책을 내 베스트 셀러 작가소리도 들어보고 연극에 빠져 몇억원의 돈을 날려도 본 별스런 의사 김정일(金貞壹.34.정신과전문의)씨.그는「문화재벌」을 꿈꾸는 남자다.
경제.정치는 다른 선진국 따라가기 바쁘지만 문화선진국은 현재의 우리에게 가장 달성하기 쉬운 목표라고 그는 주장한다.잘 정돈된 얼굴에 사근사근한 말소리.
새색시같이 얌전한 모습과는 달리「문화」를 얘기하는 그의 눈빛은 결연하기까지 하다.『병든 마음을 치료하는 최선의 처방은 문화』라고 말하는 꿈꾸는 의사 김정일을 만났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입니까.
▲80년 고려대 의대본과 1학년때 의대잡지에『사이코』란 소설로 호의령문학상을 받았어요.그게 막연히 습작수준에 머물던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계기가 됐죠.
틈틈이 주간신문.잡지에 수기류를 기고하다 90년에 첫 작품집『푸쉬케,그대의 겨울』을 출간했어요.2년뒤인 92년에 화성연쇄살인 사건을 정신의학적으로 접근한 추리작『사이코 드라마』가 소설로는 데뷔작입니다.그간 작품.수필집등 6~7편의 책을 냈습니다. -『푸쉬케…』는 연극으로도 만들어져 화제가 됐던 작품이지요. ▲90년 6월부터 약 3개월간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되는 동안 연일 만원사례를 이뤘어요.연극배우 윤석화씨가 주연에다 연출을 맡아 연장공연까지 했죠.제가 연극과 인연을 맺은 게 바로이 때입니다.잘아는 선배의사 한분이「사이코 드라마」 를 한번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해왔어요.에세이집이었던『푸쉬케…』를 희곡으로 각색해 극단측에 넘겨줬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그후 직접 연극제작에 까지 손을 대셨고 손해도 꽤 보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93년 3월에 극단『별자리 정신극회』를 창단했어요.대본만 쓸 게 아니라 본격적으로 연극을 만들어 보려는 의도였죠.
창단공연으로 사이코 드라마인『나는 다만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을 뿐이다』를 대학로 아카데미 소극장에서 공연했는데 흥행에서는 참패했어요.
한 2천만원정도 적자를 봤죠.지금은 학전소극장에서 제가 직접쓴 창작뮤지컬『별님들은 세상에 한사람씩 의미를 두어 사랑한다는데』를 공연중인데 지금 추세대로라면 이것 역시 1억원이상 적자를 볼 것같아요.「문화외도」의 대가를 톡톡히 치 르는 셈이죠.
-비소설 부문 베스트 셀러가 된『나는 다만…』으로 인세수입도톡톡히 챙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까지 25만부가 팔렸어요.인세로 1억1천만원을 받았는데연극제작에 고스란히 들어가고 이젠 종합소득세 낼 게 걱정이에요. -『나는 다만…』을 읽고 정신적으로 안정을 되찾은 독자도 있다는데 본래부터 심리치료를 염두에 두고 쓴 작품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그러나 간혹 독자중에는 제 책을 읽고「나는 다만 하고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고 있었을 뿐이다」란 자각을 하게됐고 그게 자신의 의식전환에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하는 사람도 있어요.
-대부분의 작품이 정신의학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역시 정신과의사라는 직업과 관계가 있습니까.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바이탈 사인』『돌연변이』등 의학스릴러로 유명한 미국 작가 로빈 쿡을 좋아해요.그런 유의 의학 사이코스릴러를 써보고싶은게 개인적인 소망입니다.그러다보니 자연 정신 의학쪽의 얘기를 많이 다루게 된거죠.
-의사로서 연극이다 소설이다 하는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게된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워낙 글쓰기를 좋아해요.또 연극은 병원에서 심리치료극을 몇번 하면서 좀 더 깊이있게 접근해 보고 싶었고요.연극은 정신세계를 밀도있게 표현하기 좋은 장르라고 생각해요.강한 체험,생생한 메시지를 생략과 상징을 통해 전달하기엔 안성마 춤이죠.영화시나리오도 몇편 써둔 것이 있는데 결국 글쓰기나 연극.영화에 뛰어든 것 모두가 정신문화에 대한 애착때문이었다고 생각해요.이나라를 문화선진국으로 만들고 저는 문화재벌이 되겠다는게 제 포부거든요.
-문화재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소프트웨어 싸움 ▲미국의 월트디즈니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되실거예요.미래의 최고수익사업은 문화입니다.문화를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할 가능성이 크죠.이때의 문화는 결코 기술이나 자본력의 싸움이 아니라고 생각해요.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의 싸움이란 얘기죠.향후 세계문화시장은 얼마나 좋은 소프트웨어를 내놓느냐에 따라 판도가 결정될 것입니다.최고의 소프트웨어로 세계문화시장을 석권하는 것,이것이 문화재벌입니다.
-문화선진국을 만들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겠군요.
▲그렇습니다.경제나 정치는 아무리 노력해도 당분간은 선진국들을 따라가기 바쁩니다.그러나 문화는 다릅니다.문화의 선진성은 현재의 삶에 대해 얼마나 정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어떻게 미래상을 제시하느냐가 판단 기준입니다.현재 경제.정치 선진국들은 이기준으로 보면 꼭 문화선진국은 아닙니다.예를들어 최근 개봉된 팀 버튼 제작『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전체적으론 재미도 있고 깔끔한 작품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국문화의 한계를 드러내고있습니다.
소재.사상이 낡고 미래상 제시에도 실패하고 있죠.미국문화가 소진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탄입니다.일천한 문화유산으로 감당못할 문화소프트를 양산해 낸 때문이죠.우리에겐 5천년 축적된 문화유산이 있고 사람도 충분합니다.남 은 것은 아이디어인데 그것은 명상을 통해서 얻어낼 수 있습니다.
-문화소프트의 창조를 위한 방법론에 대해 말씀해주시죠.
▲문화소프트는 영감을 통해 창조됩니다.영감은 아무때나 떠오르진 않죠.치열한 명상을 통해서 얻어집니다.집중력과 열정이 있으면 미로에서 탈출구를 찾듯 최고의 문화소프트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한때 학생운동을 하면서 너무 많은 생각에 정 신질환을 며칠 앓은 적이 있습니다.신비한 환상을 체험했었죠.그때의 체험이지금까지 제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신과 의사로서 현대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 조언을 한 말씀 해주신다면.
***다양한 文化체험 ▲정신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은 다양한 문화체험입니다.인간은 여러가지 인생을 살고싶은 다차원적인 본능을 가진 존재입니다.문화는 이런 본능을 충족시켜 주죠.저는우울증 환자에게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라고 조언하고 삶이무료하 다는 환자에게 『쉰들러 리스트』를 권합니다.현대는 죽음의 본능이 강한 사회입니다.
물질의 풍요를 누리다보니 삶의 애착을 잃어가는 거죠.터무니없는 범죄가 많아지고 쉽게 삶을 포기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전쟁이나 지진등 위기에 시달릴 때 오히려 인간은삶의 본능이 강해집니다.
그렇다고 전쟁등을 실제 할수는 없으니까 연극.영화등을 통해 풍부한 간접체험을 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가장 효과적이란 얘기죠. 〈李正宰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