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파키스탄] 전력 부족 … 하루에도 여러번 전기 끊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파키스탄 경찰이 7일(현지시간) 카라치에서 열린 반정부 집회에 참여한 야당 지지자들을 체포하고 있다. 이날 시위에서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의 지지자들은 부토의 암살사건을 철저히 재조사할 유엔 특별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다. [카라치 AP=연합뉴스]

7일 오후 파키스탄 대통령 관저와 국회의사당·대법원·총리공관 등이 모여 있는 이슬라마바드의 루르만 마큄 거리. 시민단체 회원 등 40여 명이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몰려들었다. 1분쯤 지났을까. 곧바로 국회의사당 앞 야산에서 100여 명의 경찰이 튀어나와 도로를 막고 바리케이드를 쳤다. 모두 소총을 우비 속에 숨긴 상태였다. 강제 진압은 없었지만 중무장한 병력이어서 시위대는 도로 건너편에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시위대는 한 시간여 동안 경찰 건너편 도로에서 군부독재 타도 등 구호를 외치다 자진 해산할 수밖에 없었다. 비상계엄상태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차량을 타고 대통령 관저와 의사당 앞을 통과하려면 500m쯤 떨어진 곳에서 검문을 거친 뒤에야 가능하다. 자살폭탄 테러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현지 사마TV의 쿠르암 샤자즈 기자는 “청사 주변 야산에는 줄잡아 1000여 명의 경찰이 텐트를 치고 대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피살된 지 보름이 가까워지지만 파키스탄 어디에서나 테러 위험은 여전하다. 특히 지난주 알카에다로 보이는 테러 조직이 이슬라마바드로 잠입했다는 첩보가 입수된 이후 현지 시민들의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군경은 첩보 내용을 토대로 조사를 벌여 6일 한 아파트에서 테러분자로 보이는 젊은 남녀 수명을 검거했다. 아직 그들이 알카에다 조직원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후 시내 분위기는 이전보다 더 긴장된 모습이다. 지난주에만 이슬라마바드에서는 6건의 차량 탈취와 강도 및 도난 사건이 보고됐다. 이 중 2건의 차량 강도 사건은 시내 중심부 파출소 바로 옆에서 발생했다. 시민들이 경찰을 믿지 못하는 이유다. 아브파라 주택가에서 만난 이시티아크는 “테러분자 잠입 소식 이후 부근 주민들이 외출을 꺼리고 특히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장 출입을 자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관저에서 불과 3㎞쯤 떨어진 곳에 이프티카르 초드리 전 대법원장의 자택이 있다. 군부독재 종식과 무샤라프 대통령 퇴진 운동에 앞장섰다 지난해 두 번에 걸쳐 해직된 파키스탄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이다. 8일 오후 그의 집으로 이어지는 산길 도로로 들어서자 초소에서 중무장한 경찰이 나와 차를 가로막았다. 그의 집까지는 초소에서 약 1㎞. 바로 옆에는 소총으로 무장한 2개 소대 병력이 대기 중이다. 지난해 말 무샤라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면서 해직된 초드리는 현재 가택연금 상태여서 당국의 허가 없이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게 경비원 말이다. 사진을 찍으려 하자 경비원은 “사전 허락 없이 촬영하면 발포도 가능하다”고 경고했다.

외국인이 투숙하고 있는 호텔도 삼엄한 경비를 받고 있다. 정부 청사 부근의 메이어트 호텔의 경우 입구와 정문, 그리고 객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 등 세 곳에서 검문을 통과해야 입실이 가능할 정도다.

 9일 저녁 기자는 이슬라마바드 F11 마르카 지역에서 현지 취재원과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식사 도중 갑자기 주인이 식탁마다 촛불을 밝히고 자가발전기를 돌려 벽에 붙은 형광등을 켜기 시작했다. 오후 8시부터 정전 시간이라고 그는 양해를 구했다. 곧바로 전기는 나갔고 바깥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30분 뒤 불은 들어왔지만 9시가 넘어 다시 30분 동안 정전됐다. 주인은 그나마 이 지역은 시내 중심가에서 멀지 않아 두 번 정도에 그치지만 좀 더 외곽으로 나가면 오후 시간대에는 시간 단위로 정전 사태가 빚어진다고 했다.

최대 도시 카라치의 전력 사정은 최악이다. 부토 피살 이후 하루에 절반 정도만 전력이 공급될 정도다. 카라치 시내에서 PC게임방을 하고 있는 쿠르만 말릭은 “게임 도중 전기가 수시로 나가 손님이 거의 없기 때문에 10여 일째 가게 문을 닫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카라치 전력 당국에 따르면 8일 현재 전력 공급률은 60% 정도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50%에 못 미치는 경우도 있는 실정이다. 곡창지대인 펀자브주의 주도인 라호르는 매시간 단위로 정전이다. 전력 당국은 60% 정도의 전력 공급률을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부토 전 총리가 피살된 라왈핀디 지역은 매일 열 차례가 넘게 예고 없이 정전이 이뤄져 지난주에만 주민들이 다섯 차례나 과격 시위를 했다.

전력난의 원인은 두 가지다. 지난해 하반기 정정이 불안해지면서 정부의 댐 보수 공사 등이 지연돼 댐 수량이 대폭 줄어든 데다 부토 피살 이후 과격 시위대가 주요 발전 시설을 공격해 일부 시설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은 전력 대부분을 수력발전에 의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력공사(PEPCO)는 7일 오후 총리 공관에서 현재의 전력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비상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묘안을 찾지 못했다. 전력공사 측은 파키스탄 젖줄인 인더스강 관리 위원회에 방수량을 늘려 발전량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위원회 측은 방수량을 늘릴 경우 올 상반기 농업용수 부족으로 식량난 등 더 큰 국가 재앙이 우려된다며 거부했기 때문이다. 정치 평론가인 모신 하미드는 “부토 피살로 여론이 악화된 상황에서 전력난과 치안 불안까지 겹쳐 무샤라프 정권은 사면초가 상태여서 다음달 총선 승리가 더욱 불투명해졌다”며 “정부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철권 통치를 강화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슬라마바드=최형규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