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를 가다-선셋 블러바드(황혼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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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귀청을 울릴 듯한 음악,한눈 팔 틈도 없이 화려하게 전개되는춤,깜짝 놀랄만큼 환상적인 무대,로켓 엔진을 메고 하늘로 날아다니는 주인공들,레이저를 이용한 첨단 장치….편당 수백만달러에달하는 제작비를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그 화려함 으로 세계를 뮤지컬 열풍으로 몰아넣고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본지는 미래 문화산업의 선두주자로 이제는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에까지 순회공연에 나서면서 그 위세를 과시하는 뮤지컬의 메카 브로드웨이의 대표작들을 뉴욕거주 연극영화평론가 박 영서(朴泳瑞.52.사진)씨의 생생한 관람기를 통해 소개한다.
욕의 브로드웨이 극장가는 차가운 겨울 바람에 아랑곳도 없이 뮤지컬 『선셋 불러바드 (Sunset Boulevard)』로 열기를 내뿜고 있다.「해지는 대로(大路)」가 아니라 「해뜨는 대로」라고 불러야 할 판이다.
개막(지난해 11월17일)전에 벌써 3천8백만달러라는 사상 최대 예매실적을 기록한데 이어 지금도 하루 평균 1백40만달러어치의 표가 팔려 나가는 가운데 연일 1천8백석의 민스코프 극장을 꽉 메우고 있으니 상업적인 성공 여부는 이미 결판난 셈이다.성공의 요체는 무엇일까.알려진대로 『선셋 불러바드』는 영국출신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그의 런던제작군단이 지난 50년도 오스카상 수상작인 빌리 와일러의 동명 영화를 뮤지컬로 만들어낸 작품.『팬텀 오브 오 페라』를 비롯해 『캐츠』『에비타』『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등 기존 작품을 통한 명성만으로도 관객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원작영화의 플롯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선셋 불러바드』는 무성영화시대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名여배우 놀마 데스먼드의 「석양인생」에 관한 이야기다.유성영화시대가 도래하면서 화려했던 배우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던 그녀.50을 훨씬 넘 긴 나이에 은막에서 밀려난지도 20여년.
이름조차 팬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져간지 오래건만 아직도 과거의명성과 허영에 집착해 있는 오만하고도 가련한 왕년의 명우 데스먼드.그녀가 선택한 마지막 모험에 관한 이야기다.
원작영화는 동일한 소재와 플롯을 가지고 주인공 데스먼드를 통해 온갖 화려함과 풍요,그리고 허위와 허영.기만으로 가득찬 할리우드의 부조리가 어떻게 인간성을 파괴하고 있는가를 풍자.냉소적으로 그려냈다.
반면 뮤지컬은 여주인공 데스먼드의 과거 인기와 명성에 대한 처절한 집착과 그것이 몰고온 종말을 인간이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보편적인 약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44面에 계속〉 그러나 이 작품을 더욱 돋보이게 한데는 역시 연출자 트레보 넌(그는 『레미제라블』의 연출뿐 아니라 최근18년간 영국 로열 셰익스피어극단의 상임연출자로 거의 모든 셰익스피어 작품을 도맡아오고 있다)의 뛰어난 역량과 주인공 데스먼드 역의 글렌 클로스(토니상 최우수 연기부문 2회수상)의 명연기력을 첫째로 꼽아야 할 것이다.
뮤지컬 연극은 극 전체의 테마와 극중인물의 성격.모티브를 표현해줄 여러 형태의 음악과 노래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스펙터클한 볼거리도 중요하다.
무대디자이너 존 내피어는 단순한 눈요기의 충족을 넘어 이 연극의 주제 전달에 반이상을 감당하고도 남을 유기적인 무대를 창조해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총 17t에 이르는 웅장하고도 화려한 데스먼드 저택의 거실 세트가 이 연극의 주무대인데,내실로 연결되는 곡선형 층계는 데스먼드역을 맡은 크로스의 변화무쌍한 발걸음과 조명의 변화를 통해 그녀가 겪는 행복.환희.초조.좌절.분노등의 내면 심리를 자유자재로 표현해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음악의 로이드 웨버는 16곡이상의 독창.이중창곡을 데스먼드와그의 상대역 조 길리스로 하여금 부르게 하는데,『한눈에』『이별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그리고 주제가에 해당하는 『선셋 불러바드』등이 돋보인다.한마디로『선셋 불러바드』는 일류들의 노련한 팀워크가 만들어낸 수준높은 조화가 어떤 것인가를 실감케 한다. 뮤지컬을 별로 신통치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이들이 엮어내는앙상블에 쉽사리 젖어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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