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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속마음도 통역이 되나요

중앙일보

입력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라는 우리말 제목을 달고 외국영화 하나가 개봉됐다. 영화계의 거장 프랜시스 코폴라의 딸 소피아가 감독을 맡았다. 영화 제목은 물론, 평론가 대부분이 일본이란 서먹한 문화 속에서 충격과 고독을 나누는 미국인 남녀 간의 '섬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서른둘 나이의 작가이자 감독인 소피아 자신의 일본 체험기다. 본업인 의류사업차 일본을 오가며 느꼈던 이질문화의 생소함을 언어소통의 한계를 통해 표현했다. 아무튼 지난해 가을 미국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 'Lost in Translation'이란 제목이 신선했다.

단순히 말이 안 통해 느끼는 답답함을 넘어서 '말귀'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데서 오는 오해와 해프닝은 이질문화에 내던져진 외국인에 멈추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한해 한국 사회의 생소한 경험도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던 이들에겐 영화 속 주인공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서툴고 어색함에서 비롯된 마찰의 상당 부분은 저질러지는 일의 본질과 무관하게 지도자의 '말'을 해석하는 과정에서의 오해와 상호 과잉반응으로 인해 심각하게 부각된 측면도 있다. '코드' 운운했던 것도 대충 그런 현상과 무관치 않다.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죽쑤기 경쟁은 국민의 속마음을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해 일어나는 일이다. 야당 지도부의 자해(自害)행위 역시 자기 욕심이나 분함이 앞서 서민들의 말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게다가 국민과 지도자 사이에서 의사소통 역할을 맡은 '통역사'들의 꼼수가 판을 더욱 어지럽힌다. 정부나 정치권 모두가 마찬가지다.

북핵 문제로 씨름하는 국가들 또한 상대방의 말귀를 제대로 읽고 행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이 한때 시인했다가 오리발 내미는 고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도 북.미 양측이 상대방의 속마음을 정확히 알아차리지 못해 필요 이상으로 확대된 측면이 있다. 통역이 잘못돼 일이 꼬였다는 얘기가 아니다. 북한으로선 애초 대미협상 카드로 쓰려고 했던 게 아닌 데 엉겁결에 상황을 어렵게 만들어 버린 구석이 있다는 말이다. 상대에 대한 적개심과 피해의식이 어우러지면 냉철하고 합리적인 판단이 어려워진다. 북한을 보는 서방세계의 단선적 시각과 바깥을 보는 북한의 증오와 두려움이 부딪치는 삭막한 분위기에서 서로 간에 말귀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반백년 넘게 으르렁거렸던 남북한 동족 간에도 부단한 대화와 협상 끝에 이제야 서서히 상대의 말귀를 알아차리는 정도까지 발전한 게 아닌가.

한.미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반세기 동맹이라지만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또 자존심이 유난스러운 한국의 변화에 둔감한 미국의 오만이 상호관계를 서먹하게 만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나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란 가치를 공유하기에 상대방의 말귀를 이해하는 데 넘지 못할 장애가 없다는 게 다행이다.

이질적 상대와의 만남에서 오는 불편함과 어색함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마음을 열어놓을 때 조금씩 사라진다. 우리가 동북아 경제중심을 지향하려면 일본과 중국에 대한 편견없는 이해가 우선돼야 한다. 또 북핵을 해결하고, 나아가 6자회담을 지역안보와 평화의 제도화를 위한 초석으로 삼겠다면 무엇보다 잔뜩 움츠러든 북한의 우려를 인정해야 한다.

이틀 뒤 열릴 2차 6자회담에선 북.미 모두 영화 속의 주인공 빌 머레이가 느꼈던 답답함에서 해방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양측의 말귀를 그나마 가장 잘 알아듣는 한국의 역할이 더욱 부각돼야 마땅하다.
[길정우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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