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닥터 하우스’를 사랑하는 이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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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호 36면

프로이트는 20대의 생기발랄한 여성이 자기 나이의 갑절도 넘는 남성과 사랑에 빠지는 것은 결국 ‘엘렉트라 콤플렉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교과서에도 수록될 만큼 견고한 이 이론을 단박에 무너뜨리는 이가 있다.

바로 미드 <닥터 하우스>의 주인공 ‘닥터 하우스’다. 지팡이 없이는 걷지도 못하고, 스타일은 꼬질꼬질하며, 지천명을 바라보는 나이답게 원형탈모마저 진행 중인 이 남자를 사랑하는 여성이 줄을 서면 지구 반 바퀴를 돌 만큼이라니, 믿어지는가? 아차,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 대열에?

아무튼 이 남자 심하게 ‘까칠’하다. 4년 전 프린스턴 플레인스보로 병원에 진단의학과 학부장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희귀병’ 그것뿐이다. 부하직원이 하는 말은 무조건 씹고, 어쩌다 대꾸를 해도 독설 아니면 노골적인 비아냥이 전부. ‘환자는 무조건 거짓말하는 존재’라며 손 한 번 잡아주는 일 없고, 툭하면 ‘생검’을 외치며 환자의 머리를 여는 일은 다반사.

설상가상으로 이 남자, 패션 감각도 무신경하기 그지없다. 4년 내내 입고 다니는 수트는 블랙, 그레이, 베이지 세 벌뿐. 여기에 구겨진 보라색 셔츠와 록페스티벌에서나 입어야 할 것 같은 프린트 면티셔츠를 받쳐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는 공식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이 남자, 보면 볼수록 빠져든다. 미간에 5개의 주름을 만들며 진단을 위해 고심할 때는 그 열정이 아름다워 등만 바라보고서라도 함께 밤을 새우고 싶다. 셜록 홈스 뺨치게 소소한 것도 기억하고 관찰하는 추리력은 또 얼마나 멋진가! 가끔 환자에게 “I’m sorry”라고 말할 때는 ‘에브리데이 박애주의’ 의사보다 더 진심이 느껴진다. 아무도 몰랐던 병명을 밝혀내고 성대에 필터링이라도 한 듯한 컬러풀한 발음으로 “치료를 시작해”라고 말하면 ‘하박사’를 연모하는 여성들의 온 말초신경에는 전기 자극이 짜릿하다.

‘하박사표 종합 5종 선물세트’ 같은 ‘시니컬한 섹시함’에 빠져들면 그가 물 없이 바이코딘을 수시로 삼키는 무모한 도전을 해도 갸륵해 보이고, 바이크에 지팡이를 걸치고 시동을 걸면 ‘오빠, 달려’를 외치고 싶어진다. 가끔씩 악동 같은 얼굴로 장난을 치는 모습도 멋있다. 말하자면 ‘버터왕자’들이 득실거리는 이 시대에 좀 까칠하기는 해도 ‘진심’이 느껴지는 하우스야말로 진정한 남자가 아닐까.

그러나 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려면 만만치 않은 내공이 필요하다. 삼남매 중 카메론이 잠시 진단과를 떠났던 때, 그 빈자리를 위해 인터뷰하러 온 젊은 여의사가 프라다 하이힐을 신고 사무실을 나갈 때 그가 던진 한마디.

“자신감이 없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여자들이 주로 불편을 무릅쓰고 저렇게 걷기 불편한 구두를 신지.” 친절하게 정신분석까지 곁들여주시는 하우스와 연애하려면 두 가지 길밖에 없다. 속으로 불경을 외우며 그의 독설과 냉소를 흘려버리는 대범함을 기르거나, 그가 어떤 말을 하든 스틸레토 힐을 신는 용기를 기르거나.

주의할 점은 그와 말싸움을 해서 한 번쯤은 이기고야 말겠다는 신념과 의지는 일찌감치 포기하라는 것. 그것이 바로 하우스 같은(고집스럽고 나이는 많지만 충분히 존경할 만한) 남자를 얻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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