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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경선 백태] 영입 거물들 "토박이가 무서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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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명실상부한 국민공천 시대가 개막됐다"고 선언했다. 전날 서울 마포갑 등 여덟 곳에서 지역주민들이 경선을 해 공천자를 뽑은 데 대한 자부심이 묻어났다.

비슷한 시각 국회 인근의 열린우리당사 앞. 정재학(경북 경산-청도 공천신청).이호윤(서울 도봉을)씨 등 정치신인들이 길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이 가로수에 쳐놓은 플래카드에는 "권기홍.유인태님은 민주적 경선에 응하라"고 적혀 있었다. 거물들과 한판 겨룰 수 있게 '링'을 달라는 게 이들의 요구다.

열린우리당이 요즘 경선 때문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당 지도부는 "거의 모든 정당이 경선을 한다고 해놓고, 실제로는 우리만 하고 있지 않느냐"(李康哲 영입추진단장)며 타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하고 있다. 경선 승복 문화의 정착도 열린우리당이 자랑하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밝은 면만 있는 게 아니다. 지금까지 열번의 경선에선 현역의원(김성호.강서을)이 구청장을 지낸 노현송씨에게 패한 것을 신호탄으로, 경기 고양 덕양을에서 권오갑 전 과기부 차관이 최성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박정 어학원장이 '토박이'인 우춘환 전 도의원에게 꺾이는 등 이른바 골리앗이 다윗에게 패하는 사례가 빈발했다. 이번 주말에도 주요 영입인사인 양형일 전 조선대 총장, 이해성 전 청와대 홍보수석, 박범계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 등이 경선에 나서지만 승부를 낙관할 수 없어 마음을 졸이고 있다.

경선에서 이변이 잦은 이유는 지역경선 자체가 토박이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실제 최성씨는 "지난해 8월부터 경선을 준비했다"고 밝히고 있으나, 권오갑 전 차관은 '올인 전략'에 의해 올 초에야 입당했다. 선거인단이 수백명에 불과해 일찍 조직을 다진 후보들이 유리하다.

자연 정치신인들로선 경선을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다. 유인태 전 정무수석,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 지역 외에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가 출마할 수원 영통 등 먼저 터를 잡은 신인들이 영입에 반발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반면 영입인사들은 경선을 가벼운 스파링이나 지지율 상승의 지렛대 정도로 생각하다가 '무경선 공천'요구 쪽으로 마음이 바뀌는 양상이다.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의 경우 최근 정동영 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왜 빨리 공천을 해주지 않느냐"고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鄭의장이 확답을 하지 않자 趙전처장은 입당마저 미루고 있다.

당 지도부로선 본선 경쟁력이 있는 후보가 경선에서 탈락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당헌상 '전략지역'이라는 이름으로 무경선 공천 지역을 30%(약 70곳)까지 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를 다 채우겠다고 밝히고 있어 신인들의 반발은 이어질 전망이다.

강민석.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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