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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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보노보 혁명
유병선 지음, 부키, 251쪽, 1만2000원

의료용품 전문업체 오로랩이 만든 초소형 첨단 보청기의 판매가는 0~200달러다. 통상 1500달러쯤 하는 보청기를 필요한 사람의 형편에 따라 공짜로 줄 수도 있고, 200달러에 팔기도 한다. 공산주의를 떠올리게 하는 이 프로젝트는 사실 시장경제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세계은행의 ‘발전시장혁신상’을 받았다.

이는 데이비드 드린이라는 인물의 작품이다. 그는 누구든지 이용할 수 있도록 값싸게 첨단 의료제품을 공급하면서 돈벌이도 가능하게 혁신을 주도해왔다. 드린은 자신이 지향하는 방향을 ‘배려 자본주의’와 ‘윤리적 세계화’라는 말로 요약한다. 이상과 현실의 조합이 가능하다는 게 그의 주장이고, 이를 실제로 이뤄내고 있다.

이 책은 드린처럼 자본주의 세계의 빈틈을 메우는 ‘사회적 기업가’들의 신선한 세계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이윤추구라는 기업 본래의 모습에다 사회적 기여를 더한 새로운 형태의 기업·조직을 운용하는 혁신가들이다.

빈민촌 과외 프로그램을 만든 얼 마틴 팰런이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사진제공=부키]

이들이 하는 일은 단순한 자선사업이 아니다. 사례를 하나 보자. 세계적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의 아시아 지역 마케팅 책임자로 일하던 존 우드. 1998년 책 한 권 없이 수업하는 히말라야 오지 학교를 목격한 뒤 인생 항로를 바꿨다. 지구촌 빈민 지역에 도서관을 세워주는 사업을 벌이기 위해 MS를그만둔 것이다. 그가 세운 비영리 사회적기업 ‘룸투리드(Room to Read)’는 사업 시작 6년간 스타벅스를 능가하는 고속 성장을 이뤘다. 그동안 스타벅스는 500개의 커피숍을 열었지만 룸투리드는 1000개가 넘는 도서관을 세웠다.

우드는 사회적기여에 성장·성과·경쟁의 개념을 도입, 철강왕 블린 앤드루 카네기가 미국에 세웠던 2500개보다 더 많은 도서관을 지구촌에 세우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2006년 말까지 3300만달러가 넘는 현금과 현물 기부금을 모았다. 그는 “기업이이윤을 추구하되 개도국의 교육을 지원하고 현지 인재를 양성하면서 건전한 세계화를 추구하면 궁극적으로는 시장과 이윤도 커져 더욱 이익이 된다”라고 믿는다.

사회적 기업인들은 정부나 대기업도 하지 못한 사회적 기여를 해내고 있다. 예일대 정치학과와 하버드대 로스쿨을 마친 얼 마틴 팰런은 1992년 미국 보스턴에서 19명의 어린이를 데리고 빈민촌 과외를 시작했다. 교육을 통해서만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고 ‘희망 학원’을연 것이다. 아이티에서 이민 와 성적이바닥이던 무손은 하버드 대학의 언니·오빠들을 멘토로 모시고 과외를 하면서 성적이 쑥쑥 올라 지금은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보스턴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1만명의 ‘무손’이 나왔다. 이처럼 사회적 기업인들은 시장 안에서도 따뜻한 세계화와 온정적인 행동이 가능하다는 점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은이는 이러한 사회적 기업인들을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라는 자본주의 기업가 정신을 사회적 혁신에도 사용하고 있는 사람으로 평가한다. 그러면서 이들이야말로 21세기를 이끌 주역이라 주장한다.
 

채인택 기자
 
◆보노보=유인원의 한종류로 평화를 사랑하고 낙천적인 성격을 지녔다. 야심만만하고 탐욕적이며 폭력적인 침팬지와 대조된다. 인간이 가진 상반된 성격 가운데 선한 쪽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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