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사회 NGO] 열심히 봉사한 그대 재충전 떠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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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이 지쳐가고 있다. 우리 사회에 시민단체가 본격적으로 선보인 시기는 1980년대 후반. 89년 창립된 경실련 등 수천개에 불과했던 단체들의 수는 최근 2만여개로 불어났다. 하지만 양적으로 급속히 팽창하는 동안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은 자신을 추스르고 되돌아볼 틈이 없었다.

환경재단 최열 상임이사는 "한국의 시민운동은 운동가 개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성장했지만, 이들은 재교육의 기회를 얻기가 힘들었다. 헌신의 결과가 낙오자가 되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경희대 NGO대학원 김운호 교수는 "행사.전시 위주의 양적 투자에서 벗어나 활동가들에 대한 인적 투자를 통해 질적 향상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인식한 활동가들이 시민단체와 공익재단의 도움을 얻어 자기 계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해외 연수='아름다운재단'(이사장 박상증)은 23일 공익 활동가의 교육과 재충전을 목적으로 마련한 '내일을 위한 기금' 사업에 25개 개인 및 단체를 선정했다. 2002년 당시 포스코 명예이사장이었던 박태준씨가 내놓은 기부금 10억원으로 제정된 이 기금은 올해 첫 사업으로 6천여만원을 책정했다. 대학원 진학, 해외 연수, 휴식 여행 등을 원하는 활동가들에게 1백만~4백만원씩 지원한다.

기금을 받게 된 '한국SOS어린이마을'의 자원봉사자 김난수(54)씨는 동료들과 함께 3박5일의 베트남 여행을 떠난다. 버려진 아이들을 돌보며 젊음을 바쳐 독신으로 살아온 9명의 봉사자들이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갖겠다는 의미를 두고 있다. '장애인이동권연대'윤기현(23) 선전국 간사는 "그동안 활동가들이 업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술자리 뿐"이었다며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바닷가 캠프를 통해 장애인 활동가들과의 소통의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안식년=녹색연합 정책실장 김타균(36)씨는 "10년간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밑천이 드러난 느낌이다. 쉬면서 그간의 활동을 정리하고 싶다" 며 올 한해를 '녹색 휴식년'으로 정하고 재충전에 들어갔다.

이 제도는 녹색연합이 96년부터 도입해 6년 이상 된 활동가에게 1년의 유급 휴식년을 주는 것. 金씨는 한국 환경운동사를 정리하고 중국에 가서 현지의 환경 오염에 대해 연구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참여연대도 2001년부터 7년 이상된 활동가들에게 1년의 안식년을 주고 있으며, 군소 시민단체들도 상근자들끼리 돌아가며 안식년을 갖는 등 이 제도가 점차 일반화되는 추세다.

◇전문성 확보=환경재단은 지난 19일 서울대 등의 석.박사 과정에 입학한 5명을 선정, 학비 전액과 월 1백만원의 생활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한국개발연구원 정책학 석사과정에 다니게 된 한국여성단체연합 김기선미 정책부장은 "권리 주장이 아니라 경제성 차원에서의 여성운동 논리를 개발하고 싶다"며 "경제공부를 통해 대안적 여성정책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 장학사업은 기업이 생계비를 지원하고, 서울대 등 12개 제휴 대학교가 수업료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배노필.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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