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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해외칼럼

아프가니스탄과 나토의 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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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많은 난관이 예상되지만 아프간의 상황은 이라크와 달리 희망이 없지는 않다. 무엇보다도 이곳이 9·11 테러를 일으킨 테러 조직의 온상이기 때문이다. 배후자로 지목되고 있는 오사마 빈 라덴은 아직도 이 주변에 머물며 알카에다를 중심으로 전 세계 이슬람 테러 조직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아프간 전쟁은 이 나라에서 지속돼 온 내전을 종식시켰다. 그래서 아프간전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라크전과 달리 서방의 아프간전 참전은 아프간의 내적 구조를 와해시키거나 단결을 위협하지 않았다. 만약 서방이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인내심을 갖고 이를 밀어붙였다면, 아프간 정부가 여러 국가의 도움을 받아 탈레반을 격퇴하고 아프간의 단합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을 위해서는 다음의 네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먼저 아프간 보안군이 강화돼야 한다. 탈레반을 격퇴하고 마약 재배를 통제해 국내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보안군은 더 강해져야 한다. 둘째 나토 동맹군의 확고한 의지가 필요하다. 나토는 각 동맹국이 내세우는 조건에 휘둘리지 말고 계속 주둔해야 한다. 이를 위해 독일과 프랑스는 참전에 내세우는 특별한 조건들을 포기해야 한다. 셋째 개발 원조를 많이 늘려야 한다. 지금까지 방치돼 온 남부 지역의 재건이 시급하다. 넷째 2001년 본에서 이뤄진 아프간 과도정부 구성에 관한 합의를 제대로 지켜야 한다.

아프간 전쟁은 아프간만의 내전이 아니다. 이곳은 주변 지역 갈등과 헤게모니 싸움 때문에 수십년간 몸살을 앓아 왔다. 따라서 탈레반이 세력을 회복하게 된 데에는 남·동부 지역이 재건되지 않고 비참하게 방치돼 온 데도 원인이 있다. 외부 요인도 있었다. 파키스탄은 본 합의를 제대로 지키지 않고 오히려 탈레반을 지지했다. 아프간·파키스탄 변경 지역에 탈레반의 은신처가 없었다면, 또 파키스탄 사람들이 이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지 않았다면 탈레반의 부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파키스탄은 아프간의 카르자이 정부가 자신들에게 별로 협조적이지 않으며, 자국의 중요한 전략적 이익에 오히려 위협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이 탈레반을 돕는 일은 ‘불장난’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다. 오히려 파키스탄 탈레반까지 생겨나 자국에 위협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토 동맹국들이 각기 정치·군사적 결정권을 내세우는 상황도 나토의 발목을 잡고 있다. 나토의 성공을 위해 각 국가는 자국의 조건을 내세우는 일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 대신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공동 전략을 세워야 한다. 파키스탄·이란·인도도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손잡아야 한다.

이라크전이 ‘희망사항’으로 시작된 전쟁인 반면 아프간 전쟁은 ‘필수불가결한’ 전쟁이었다. 우리는 9·11 테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열성이 부족하고 정치적 식견이 모자라 만약 서방이 아프간에서 실패하고 물러선다면 그것은 비극 그 이상이 될 것이며 전무후무한 정치적 실책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럽은 감당할 수 없는 큰 비용을 치러야 하며 나토의 미래도 위험에 빠질 것이다.

요슈카 피셔 전 독일 외무장관
정리=이은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