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오동 천년, 탄금 50년 50. 작품세계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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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969년 ‘가라도’를 작곡한 필자.

나에게도 실패작이 많다. 1962년 작곡을 시작한 이래 처음 받은 영감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첫 가야금 곡인 ‘숲’이 그랬듯이 간절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이 음악적인 소리로 머릿속에 완전히 자리 잡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막연히 가제목만 생각하고 시작했다가 결국 구상 단계에서 버린 곡도 많았다. 완성은 했지만 내 작품 목록에 차마 넣을 수 없는 것도 많았다.

 몇 해 전 SBS 드라마의 배경음악을 연주한 적이 있다. 5분 안팎의 곡이었는데 드라마 분위기에는 맞았지만 내 기분에는 음악적 전개가 영 충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곡은 내 작품 목록에 넣지 않는다. 그리고 이보다도 더 신통치 않은 곡은 쓰다가 찢어버린 적도 많았다.

20세기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은 “불가능성의 매력”이라는 말을 했다. 가능한 일은 재미가 없다. 나 역시 스승도 선배도 책도 없는 작곡을 스스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곡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느꼈다.

 내 생활 주변에서 소재를 찾아 작곡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나니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69년에는 작품 세계를 넓히지 않으면 작곡가로서의 생명이 길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했다. 그래서 역사상 최초의 가야금 작곡가로 꼽히는 우륵을 떠올렸다. 나는 그를 그리워 했다. 그를 만나 대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의 이름과 몇 개의 곡명뿐이었다. 그의 곡명 중에서 ‘상(上)가라도’와 ‘하(下)가라도’라는 것이 있는데 지금으로 치면 ‘업타운’과 ‘다운타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가라도는 우륵이 사랑했던 곳의 지명이다.

나는 그토록 만나고 싶던 우륵이 살던 마을 이름을 알았다는 것만으로도 감동했다. 그래서 우륵에 대한 곡을 쓰기 시작했다.

 1부는 우륵이 앉아 가야금 줄을 고르는 장면을 그렸다. 우륵 정도가 되면 12음 모두를 자유자재로 고를 줄 알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는 12음을 모두 썼다. 그러면서도 부자연스럽지 않게 쓰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2부에서는 우륵이 친구를 찾아 나서는 장면을 그렸다. 그는 늠름하게 말을 타고 친구 집에 들를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곡이 ‘가라도’다. 이처럼 ‘가라도’는 내 작품 세계가 생활 중심에서 역사의식 쪽으로 넓어지는 계기가 됐다.

이 곡을 쓸 때도 처음 구상이 참 힘들었다. 며칠이고 방에 틀어박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작업만 했다. 생각을 음으로 만드는 작업은 물꼬를 탁 트기가 정말 힘든 과정이다. 그러다가 뭔가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면 일사천리였다. 곡 하나를 완성하는 데 2주면 충분했다.

황병기<가야금 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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