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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올해 공개 활동 분석해 보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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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08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이달 초 인민군 1596부대 산하 목화 가공공장을 찾아 보관된 솜을 보면서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 오른쪽은 올해 김정일을 가장 많이 수행한 현철해 총정치국 상무부국장. 연합뉴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로 2007년 원단을 열었다. 이 궁전은 김일성 주석의 시신이 안치된 곳이다. 김정일이 이 궁전을 1월 1일에 들른 것은 6년 만이다. 김일성 탄생 95돌과 맞물린 것 같다. 북한은 5, 10년 단위로 끝나는 이른바 ‘꺾어지는 해’의 행사를 중시한다. 궁전 참배 이래 김정일은 88차례의 공개 활동(12월 27일 기준)을 했다. 2005년 130회, 지난해 102회에 비하면 적잖이 줄었다(그래픽 참조). 80회대의 공개 활동은 2003년(88회) 이래 처음이다. 2003년은 예외적인 해였다. 김정일은 그해 2월 13일~4월 2일 모습을 감췄다. 북핵 문제로 북·미 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고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했던 시점이다. 당시 김정일은 천혜의 요새인 백두산 쪽 삼지연초대소에서 지냈다고 한다. 4년 전과 달리 북·미 화해 기류가 완연했던 올해 공개 활동이 줄어든 것은 건강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심장·간이 좋지 않고 당뇨 증세가 있다고 정보 당국은 분석해 왔다. 독일의 심장 전문의가 5월 방북한 것이 확인되면서 건강 이상설은 증폭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김정일은 10월의 2차 남북 정상회담 기간 중 직접 진화에 나섰다. “(남측 언론에서) 내가 마치 당뇨병에, 심장병까지 있는 것처럼 보도하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건강 이상說 속 몰아치기 현지지도

북한은 노동신문 등을 통해 전하는 김정일의 공개 활동 날짜를 밝히지 않는다. 2002년 8월 러시아 방문 이후 날짜를 밝히지 않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2003년 7월부터는 외교 활동이나 공식 행사를 빼고는 아예 날짜를 적시하지 않고 있다. 서방 정보기관의 김정일 동선 추적을 따돌리려는 생각이 깔려있는 듯하다. 그 시기의 후세인 이라크 정권의 몰락 효과인지 모른다. 이라크전 이래 북한군의 화두는 ‘혁명의 수뇌부 옹호’다.

국방과 경제는 김정일 공개 활동의 양대 축이다. 김정일 시대의 기치인 선군정치와 최근의 슬로건인 경제강국 건설과 떼놓을 수 없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88회의 공개 활동 가운데 국방이 43%(38건), 경제가 24%(21건)였다. 하지만 큰 변화가 있었다. 예년에 비해 국방 쪽이 많이 줄고 경제 쪽이 그만큼 늘어났다. 2001~2006년의 국방분야 평균 공개 활동 비율은 54%였다. 지난해엔 무려 70%였다. 반면 과거 6년간 경제분야 평균 비율은 17%였다. 올해는 2001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군사 분야 활동이 준 것은 정세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일 수 있다. 올해는 조지 W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북·미 관계가 가장 호전됐다. 북·미 양자 협상이 봇물을 이뤘고,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의 북·미 교차방문이 성사됐다. 북한의 핵시설 폐쇄와 불능화 진전을 가져온 6자회담의 산물이다. 김정일의 군부대 방문은 외부의 위협 차원보다는 국내 정치나 군사 전술 측면에서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수요가 줄었다는 얘기다. 지난해 군 활동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7월의 미사일 발사 실험과 10월의 핵실험, 이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병영국가’의 최고지도자가 난세에 군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경제 분야 공개 활동은 노동신문 등 3개지의 1월 1일 공동사설(신년사)이 ‘사회주의 경제강국 건설을 위한 공격전’을 강조하면서 증가가 예상됐던 부문. 김정일은 1월 19일 자강도 희천의 공작기계공장을 출발점으로 삼아 27일의 황해북도 사리원 돼지공장 현지지도로 마감했다. 김정일이 둘러본 곳은 북한 경제의 현주소를 상징한다. ‘경제강국’이란 공세적 구호가 무색하다. 장연호 양어장·청진 기초식품공장·강계 오리농장·사리원 돼지공장 등은 먹는 문제 해결과 맞닿아 있다. 주민 생활이 올라가지 않으면 정권의 권위는 서지 않는다. 김일성 이래 경제의 4대 선행부문으로 자리매김한 전력·석탄·금속·철도운수에 대한 시찰은 올해도 계속됐다. 그중에서도 발전소(전력)와 제철·제강·제련소(금속) 현지지도가 두드러졌다.

경제 분야 시찰은 노력동원 운동과 동전의 양면이다. ‘천리마작업반운동’ ‘속도전’ 등은 그 산물이었다. 올해는 ‘태천의 기상’이다. 김정일은 1월 평안북도 태천4호 청년발전소에 들러 악전고투 속에 발전소를 완공한 건설자들의 정신을 그렇게 치켜세웠다. 이후 북한에선 ‘태천의 기상’ 따라 배우기 캠페인이 펼쳐졌다. 경제 분야 공개 활동을 통해선 김정일 우상화 작업도 병행했다. 북한 매체들은 김정일이 8월에 함경남북도의 기업소 등을 집중 시찰한 것을 두고 ‘삼복철 강행군’이라고 불렀다.

이 때문에 공개 활동 시기는 8월이 18회로 가장 많았다. 함경도를 돌면서 군부대(8회)도 함께 시찰했다. 시찰 지역의 선택과 집중 또한 김정일의 건강을 저울질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음은 12월(11회). 이 가운데 국방 분야가 10회로 압도적이었다. 북한 군의 동계 군사훈련을 점검하는 차원일 수 있다.

대외활동 분야는 남한·중국·베트남·러시아로 제한됐다. 해외 나들이는 없었다. 10월에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데 이어 농득마인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과 만나 남한·베트남과의 교류 확대 전기를 마련했다. 그 후속조치로 남북 총리회담과 김영일 총리의 베트남 방문이 이뤄졌다. 3월엔 평양 주재 중국대사관을 직접 찾았고, 7월과 10월엔 각각 중국 양제츠 외교부장과 류윈산 공산당 서기처 서기를 면담했다. 중국 인사와의 지속적인 접촉은 대중 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러시아와는 민속합창단과 무용단 공연 관람(문화로 분류)을 통해 나름대로의 관심을 보였다는 풀이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신고를 둘러싼 북·미 간 기싸움 와중에 새해를 맞는 김정일의 첫 공개 활동과 언급 내용이 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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