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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최태원 SK 회장의 인사·조직 실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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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호 18면

블룸버그 뉴스

최태원 회장과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지난 10월 그룹 세미나를 했다. 여기에서 바로 CIC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한다. CIC(Company In Company)란 기존 사업 조직을 독립된 회사 형태로 개편한 것으로, 각 CIC의 사장이 투자와 신규사업 개발에 필요한 기획부터 재무·인사·법무 등의 전반적인 업무를 개별 회사처럼 경영하는 개념이다(그림 참조). CEO는 CIC 부문을 총괄하면서 미래 전략을 짜는 일에 전력하게 된다.

‘묻어가는 분위기’ 없앤다

최 회장은 이 세미나에서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추려면 CEO 한 사람의 의사결정에 의존하는 조직 운영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그러려면 단위사업별 독립 경영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7월 SK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제3의 창업’을 선언한 최 회장은 CIC가 지주회사의 성장모델로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후문이
다.

인력개발실장으로 있던 김태진 상무(현 SK차이나 대표)가 CIC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새 조직의 뼈대를 잡았다. 이렇게 시행안이 나온 지 불과 2개월 만에 SK는 CIC 제도를 전격 시행한다. 그만큼 오너 경영인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는 것이다. 최 회장의 조직 개편 논리는 이랬다.

“주력 계열사들이 사내 독립 기업제를 도입한 것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성장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독립 경영과 책임 경영을 각 사 단위에서 사업 차원까지 확대하는 의미가 있다. 이 제도 도입으로 각 회사의 기업가치가 커지면 회사에서 만드는 행복의 크기도 커져 이해 관계자들의 행복도 같이 커지는 선순환 경영이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SK 측은 CIC 도입에 대해 “그룹 단위에서 개별기업 단위로, 다시 사업별로 성장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조직 개편”이라고 설명한다. 지난 2001년 중국 CEO 세미나에서 최태원 회장은 “그룹 단위의 발전 시대는 지났다”며 각 사별 생존전략을 내놓으라고 주문한다. SK는 1980년대는 유공(현 SK에너지), 90년대는 이동통신을 기반으로 그룹 전체가 성장하는 형태였다. 최 회장은 당시 “이제는 이런 식의 그룹 단위 성장은 불가능하다. 각 사 단위에서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CIC로의 조직 개편은 이런 혁신 경영의 연장선이라는 것.

SK 관계자는 “SK는 2002년부터 3년 단위의 목표를 정해 혁신을 추진해왔다”면서 “2002~2004년의 경영 화두는 ‘생존’, 2007년까지는 ‘성장’이었다면 내년부터는 ‘본격 성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바뀌었나

SK텔레콤의 A상무는 최근 남모를 중압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근무하고 있는 글로벌 비즈니스 부문은 현재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 부서가 아니다. 또 국내에서야 최고의 이동통신 기업으로 꼽히지만 SK텔레콤의 해외 사업은 아직 투자 단계에 있다.

그런데 그가 긴장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회사의 조직 개편으로 사정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SK그룹의 주요 계열사들이 사업부문별로 ‘독립’ 경영을 시작하면서 부진한 사업부문이 ‘적당히 묻어가는’ 분위기가 달라질 것임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SK에너지와 SK텔레콤·SK네트웍스는 각각 사내 사업부문을 4개 CIC로 쪼갰다. 한 회사 안에 묶여 있는 것은 같지만 CIC는 ‘독립 회사’처럼 운영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부문제와는 구별된다. 가령 SK텔레콤은 이동통신 사업을 관장하는 MNO비즈컴퍼니, 글로벌비즈컴퍼니, C&I(컨버전스·인터넷)비즈컴퍼니 등으로 나누어진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총괄·정보통신·디지털미디어 총괄 부문으로 나누어 회사를 경영하는 것과 유사하다. 회사 측은 조만간 다른 자회사들도 CIC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조직 개편과 함께 ‘최태원의 사람들’이 전면 배치된 것이 눈에 띈다. SK텔레콤의 주력사업인 이동전화 사업 중심의 MNO컴퍼니를 맡은 하성민(50) 사장은 사내에서 2인자 자리를 굳혔다는 평이다. 또 이방형(52) SK마케팅컴퍼니 사업추진단장, 서진우(46) SK텔레콤 글로벌 비즈니스 사장, 유정준(45) SK에너지 R&C(화학제품·자원개발) 사장 등은 오래 전부터 최태원 회장의 복심(腹心)으로 불렸던 인물들. 40~50대 초반의 ‘젊은 피’로 최 회장으로선 조직 개편과 함께 자기 사람들로 주력사 간판 진용을 갖추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최 회장의 베팅?

지난 3~4년간 재계에서 SK는 시련의 한 중심에 서 있었다. 2003년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SK해운 분식회계 사태가 터졌고, 곧바로 소버린자산운용이 그룹 지주회사인 SK㈜ 지분을 매입하면서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놓였다. 또 SK네트웍스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다시 위기를 겪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최 회장은 ‘강한 개혁’에 베팅했다. 그룹 구조조정추진본부를 해체했고, 사외이사 비율을 70%로 늘리는 과감한 지배구조 개혁에 나섰다. 2004년엔 ‘포스트 재벌’을 선포하면서 “그룹 체계는 브랜드를 공유하는 네트워크”라고 정의했다. 이름하여 ‘뉴 SK’ 선언이다.

그룹 경영이 안정되면서 최 회장은 내부 시스템을 다듬는 행보에 힘을 실었다. 중국·미국 시장 진출 같은 ‘큰 그림’을 제시하는 것은 물론 지주회사 체제 선언, CIC 도입 등이 최근 1~2년 새 SK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본격적으로 최태원식 경영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제 재계는 시련 다음에 이어지는 최 회장의 도전에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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