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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는 聖人 반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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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그가 없었다면 오늘날의 문명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11월 독일 공영 ZDF 방송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독일인 10걸'에 요하네스 구텐베르크(1397~1468.사진)를 선정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방송은 "구텐베르크가 없었다면 종교개혁.산업혁명.민주주의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평했다. 앞서 1998년 구텐베르크는 독일에서 '지난 천년간 인류의 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발명을 한 인물'로도 뽑혔다.

독일만큼 인쇄문화에 자부심을 느끼는 나라도 드물다. 서양 최초의 금속활자를 사용한 활판인쇄술이 독일에서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발명자인 구텐베르크는 독일에서 가히 성인의 반열에 올라 있다.

실제로 구텐베르크 덕분에 서양은 혁명적인 변화를 겪었다. 그의 인쇄술이 독일에서 유럽 각지로 보급되면서 근대 서양문명의 원동력이 됐다. 구텐베르크 이전에는 소수의 성직자와 특권층만이 책을 소유할 수 있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1483~1546) 역시 활판 인쇄술이 없었다면 역사에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번역한 성경과 개혁의 목소리를 전단지 형태로 대량 인쇄했고, 그에 따라 종교혁명은 빠르게 확산됐다. 그러나 성경인쇄는 혁명의 시작이었다. 언론인 라인홀트 베크만은 "세계 사람들이 기록된 정보를 가장 빠르게 접할 수 있게 된 계기는 구텐베르크가 책을 인쇄하면서부터 가능해졌다"고 말했다.

책의 대량 보급으로 지식혁명도 일어났다. 문맹자의 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그래서인지 구텐베르크가 태어난 독일 중부 마인츠시는 성지(聖地) 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 세계 최대의 도서 전시회가 바로 옆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리게 된 것도 우연은 아니다. 마인츠의 대학 이름도 구텐베르크의 이름을 빌렸으며, 해마다 수천명의 참배객이 구텐베르크 박물관에 몰려든다. 1452년판 '구텐베르크 성서'를 보기 위해서다. 박물관장인 한네부트 벤츠 박사는 "구텐베르크 성서는 5백년이나 묵었지만 어제 인쇄한 것처럼 전혀 손상된 흔적이 없다"고 경탄했다.

인쇄문화에 대한 독일인의 자부심은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만들어낸 한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인쇄술의 역사를 소개한 전문서가 출간되고, 관련 전시회.세미나도 열리고 있다.

특히 94년 미하엘 기제케 교수가 쓴 '근대 초기의 서적 인쇄술'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과 함께 고려시대의 금속활자, 조선시대의 인쇄술을 체계적으로 비교, 판을 거듭하면서 유럽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9월 독일 괴팅겐대에선 고려시대 금속활자본인 직지심경 영인본과 인쇄 과정 등을 담은 기록물을 전시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행사는 북독일방송국(NDR)이 3회에 걸쳐 방송했고, 괴팅거타게스블라트 등 지역 일간지가 1면에 보도하는 등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다. 당시 별도로 열린 고인쇄문화 학술회의에선 한.독 양국 학자들이 '한국과 독일의 고인쇄 문화'라는 주제를 놓고 열띤 토론도 벌였다.

베를린=유권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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