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연애 무기’ 공작 깃털엔 더 깊은 뜻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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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왜 사랑에 빠지면 착해지는가
토르 뇌레트라네르스 지음, 박종윤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360쪽, 1만3000원

제목에 홀리지 말 것. 연애론 또는 연애심리론이 아니니 섣부른 기대를 품었다가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경우처럼 당혹스러울 터다. 덴마크의 과학저술가가 쓴 과학책이다. 정확하게는 진화론 또는 진화심리학에 근거한 문명비평서에 가깝다.

지은이는 인간이 경제학에서 상정하듯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동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물에 빠진 사람을 보면 앞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구하려는 것을 호모 이코노미쿠스의 반증으로 든다. 나아가 다양한 과학적 이론을 동원해 이 같은 이타적 행동이 인류 진화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설파한다.

이 과정에서 지은이가 크게 의존하는 논거가 다윈의 성선택론(性選擇論)과 이스라엘 조류학자 아모츠 자하비의 ‘핸디캡 원리’다. 암컷이 수컷을 고른다는 성선택론은 다윈의 진화론 중 주요한 축으로, 인간의 경우 뛰어난 남성을 선택함으로써 여성이 일상생활은 물론 광범위한 진화의 역사까지 주도해 왔다는 이론이다. 즉 역사의 엔진은 남성이지만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은 여성이라는 시각이다.

‘핸디캡 원리’는 자하비가 아라비아꼬리치레라는 새무리를 관찰한 결과를 학설로 정립한 것으로 간단히 말하면 ‘최고는 남들에게 자신의 우월성을 납득시키기 위해 핸디캡을 선택한다’는 내용이다. 수컷 공작의 화려한 꼬리 깃털은 생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만일 적자생존이란 원리만 통용됐다면 긴 꼬리 깃털을 가진 공작은 여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핸디캡 원리’에 따르면 그런 거추장스럽기만 한 장식품을 달고도 살아남았다는 것은 다른 자질이 특별히 뛰어나다는 증거가 되기에 암컷 공작들은 그런 수컷을 선택했고 그 덕에 오늘날 우리가 보는 공작이 있다고 설명한다.

지은이의 주장은 지구촌의 부유층 10억 명이 하루 16센트씩만 기부하면 10억 명이 굶주림을 면할 수 있다는 등 서로 베풀고 관대한 사회가 인류생존에 더 적합하다는 데까지 이어진다. 짝짓기는 물론 창조력, 원대한 목표를 추구하는 힘, 문화의 생성· 발달까지 성선택론이 작용한다는 주장이 거슬리긴 하지만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책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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