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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투데이

이명박과 사르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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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 당선자는 굉장히 활동적이라는 평판 덕에 ‘불도저’라는 별명을 얻었다. 제스처에서조차 늘 역동적인 사르코지는 ‘빠른(speedy) 사르코지’로 불린다.

이명박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부터 온갖 일을 닥치는 대로 해야 했고, 1965년 현대에 입사해 한국의 중요한 재벌 중 하나로 키우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사르코지의 가정은 유복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상황이 달라졌다. 어머니는 세 아들을 돌봐야 했고, 사르코지는 물질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됐다. 그는 프랑스 최고 엘리트 양성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를 나오지 않은 흔치 않은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이다. 전통적인 프랑스 엘리트들에겐 못마땅함을 드러내곤 하는 사르코지도 유력 기업가들에겐 호의를 베푼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현재 유명한 프랑스 가수와 열애에 빠져 있다. TV에 출연하는 걸 꺼리는 듯한 이명박 당선자와 달리 사르코지는 늘 주목받고 싶어한다. TV 뉴스에 나오는 것에 너무나 욕심이 많아서 그를 하루라도 화면에 나오지 않게 하자는 움직임이 있을 정도다.

프랑스와 한국 사람 모두 경제와 사회적 관심사에 중점을 두고 투표했지만, 두 나라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이명박의 ‘747 공약(연 7% 경제성장,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10년 내 세계 7대 경제 강국)’은 매년 2% 성장이라는 프랑스의 목표를 감안할 때 꿈 같아 보인다. 프랑스는 세계 경제 다섯째 자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는 반면 한국의 야심은 일곱째 자리에 오르는 것이다.

그러나 양국에서 집값 상승과 심화하는 불평등, 물가 우려 등은 두 대통령을 선택하는 주요한 동기가 됐다. 이명박 당선자와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들 목표를 이루기 위한 최선의 선택으로 인식됐다.

두 사람의 공약은 유사점이 많다. 감세, 시장 개방, 경제 자유화, 공공지출 감소, 그리고 노동 규제 완화 등등. 이명박 당선자는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가 좋지 않았던 재벌을 돕고 싶어한다.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유력 CEO들과 가까운 친구 사이다. 프랑스의 언론 재벌인 아르노 라가드르는 사르코지를 형제라 부르고, 프랑스 TV·건설·통신업체를 갖고 있는 마틴 브이그는 사르코지 아들의 대부다.

국제 정치 이슈에 대해서도 비슷한 점이 많다. 둘 다 반미에 가까웠던 전임자들을 비판해 왔다. 이명박 당선자는 햇볕정책을 뒤엎지는 않겠지만 북한에 대가 없이 지나치게 양보만 해 왔다고 생각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전임자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건 옳았지만 너무 노골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길 원한다. 사실 이 부분은 2009년 백악관에 누가 입성하느냐에 달렸다. 게다가 둘은 석유와 가스를 위해 러시아와의 관계도 개선하고 싶어한다.

한국과 프랑스가 협력할 여지가 많다는 건 분명하다. 양국은 전략적 제휴 관계를 발전시켜야만 한다. 프랑스에서 한국은 일본과 중국에 가려 중요성이 잘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국제·경제·정치적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잘못된 것이다. 한국도 프랑스의 전략적 중요성을 폭넓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 또한 잘못이다.

두 나라는 미국과 동맹을 원하면서도 연대하지 않고 있다. 이런 이슈를 함께 논의한다면 양국은 상호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서울과 파리 사이에 새로운 지평을 열 최적의 시기로 보인다.

파스칼 보니파스 프랑스 국제관계 전략문제 연구소장

정리=원낙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