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지방 재건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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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때 건설업체들이 치열한 수주 경쟁을 벌였던 지방 재개발·재건축사업이 애물단지 신세다. 재개발·재건축 후 들어설 새 아파트 대신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가치만큼 현금으로 챙겨 빠져나가려는 조합원이 많게는 전체 조합원의 70~80%에 달한다. 서울에선 재개발·재건축을 하면 조합원들이 돈을 버는데 지방에선 되레 손해 볼 수도 있어서다.

현금을 받고 조합원이 빠져나가면 업체는 그 자리를 일반분양분으로 메워야 한다. 하지만 미분양분이 넘쳐나는 마당에 이를 원할 업체는 거의 없다. 이 때문에 현금 청산 문제를 놓고 업체 측과 조합원 간 마찰을 빚고 있다. 사업성이 불투명해 재개발·재건축사업을 포기하는 곳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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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현금 주세요”=지난달 말부터 조합원들로부터 새 아파트 분양 신청을 받고 있는 대구시 북구 복현시영 재건축사업장의 경우 신청률이 30%대에 그치고 있다. 최근 조합원 분양신청을 받은 부산진구 양정1구역 재개발사업장도 신청률이 20~30% 선이었다. 롯데건설 이경희 부장은 “올 초까지만 해도 30~40% 선을 유지하던 부산지역 재개발사업장 현금청산 비율이 최근 70~80%선으로 급증했다”고 전했다.

현금 청산이 급증하는 것은 지방 주택시장 침체로 기존 아파트 값이 맥을 못 추고 있어서다. 조합원 입장에선 새 아파트를 배정받더라도 투자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실제 대구시 복현시영의 경우 49㎡형에 살고 있는 조합원이 재건축 후 105㎡형을 배정받으려면 2억1700만원을 부담해야 한다. 지금 살고 있는 집에 대한 평가분 7500만원을 제외하더라도 1억4000만원가량의 돈을 더 내야 한다. 주변 중개업소 관계자는 “복현동 기존 아파트 105㎡형 시세가 1억3000만원대여서 새 아파트를 배정받기보다 현금 청산 금액에 자기 돈을 보태 기존 아파트를 사는 게 이익이라고 판단하는 조합원이 많다”고 전했다. 부산시 양정1구역 3단지의 경우 109㎡형 조합원 분양가가 2억6000만원 선으로 같은 면적의 기존 아파트 시세(백조아파트 109㎡형 1억3000만원대)의 두 배가량이다.

이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는 사업장도 나온다. 5년 이상 재개발사업 준비를 해온 대구시 수성구 황금2동 재개발사업과 남구 대명동 재개발사업 추진위원회가 최근 추진위를 해산했다.
 
◆또 다른 미분양 시발점=현금 청산은 지방 주택시장 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조합원이 빠져나간 만큼 일반분양분이 늘어나 또 다른 미분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 최근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에서 재개발 아파트 301가구에 대해 일반청약을 한 현대건설의 경우 순위 내에서 202가구나 미달됐다. 영산대 부동산연구소 최영관 연구위원은 “미분양 홍수 속에 재개발·재건축단지에서까지 분양물량이 많이 풀릴 예정이어서 지방 분양시장 침체 현상은 심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함종선 기자
 

◆현금 청산=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의 원주민(조합원)들이 해당 지역에 지어질 새 아파트 입주권리 대신 자신이 살던 집에 대한 평가액만큼 현금으로 받아 조합에서 탈퇴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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