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개’ 이승현 “밑바닥까지 떨어진 인생, 자살 생각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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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영화 ‘고교 얄개’를 통해 청춘 스타로 떠올랐다. 밤톨 모양 까까머리에 특유의 또랑또랑한 목소리, 무엇보다 장난기 가득한 웃음이 매력적이었던 배우 이승현(47)이다.

86년 화려했던 연기 생활을 뒤로한 채 말도 없이 훌쩍 캐나다로 떠나버린 후 침묵했던 그가 21년 만에 가수로 연예계 복귀를 꿈꾸고 있다. 어느새 흰머리가 드문드문 보이고 눈가에는 주름이 새겨 있는 중년의 남성이 되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트레이드 마크였던 ‘얄개스러운’ 웃음이 배어 있다.
 
▲자유를 찾아 떠나다
 
한때 이승현은 ‘히어로’였다.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아역 배우로 데뷔한 후 주인공을 맡은 작품만 200여 편이 넘었다. 고등학생 신분에 집 한 채는 거뜬히 살 만한 액수를 작품 한 편 출연료로 받았다. 돈도, 명예도 부족함이 없던 시기. 하지만 어느 날 홀연히 연예계를 떠났다. 그리고 13년이 넘도록 한국을 등진 채 캐나다와 필리핀, 영국 그리고 터키 등지에서 생활했다.
  
“‘얄개’는 저에게 행복과 불행을 함께 가져다준 이름입니다. 성인이 됐어도 사람들은 절 ‘얄개’로만 봤으니까요. ‘얄개’ 이승현이 베드 신을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인지 영화 캐스팅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하이틴 영화를 할 수도 없고…. 아역배우 출신의 비애지요.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어머니가 ‘그만큼 했으면 딴 세상을 느껴봐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훌쩍 떠났습니다.”
 
국내에서는 어딜 가나 대중에 휩싸였던 청춘 스타는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캐나다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학 연수 차원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귀국을 점점 뒤로 미루었다.
 
▲청소부에 지렁이잡이까지
 
하지만 1년도 채 못 돼 고난이 시작됐다. 국내에서 어머니가 시작한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벌어뒀던 돈이 모두 사라졌다, 설상가상으로 캐나다에서 신세지고 있던 단 한 사람의 지인 또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캐나다에서 천애고아가 된 심정이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돈’이었다. 학교를 다니고 있던 그로서는 그야말로 생계가 막막했다. 어머니에게 손을 벌릴 수도 없는 상황에서 막노동판에 뛰어들었고, 레스토랑에서 접시를 닦았다. 그리고 호텔에서 청소부로 일했다. 잘 곳이 없어 공항에서 새우잠을 잔 것도 여러 날이었다. 생계비를 벌 수 있다는 말에 ‘지렁이잡이’까지 뛰어들었다.

지렁이로 통조림 캔 하나를 채우면 한국 돈으로 약 8만원을 벌 수 있었지만 지렁이 활동 시간이 새벽녘인 만큼 아침 해뜨기 전까지 무턱대고 잡아야 했다. 하지만 기술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신통치 않았다. 오히려 밤낮이 바뀌고, 돈이 없어서 아무 음식으로나 배를 채우다 보니 살도 찌고, 건강도 악화됐다.
 
캐나다 생활 8년쯤 됐을까. 도저히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필리핀에서 선교 활동을 하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 갔다. 거기서 3년 동안 선교 활동을 하면서 좀 사람답게 살게 된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결혼도 하고, 안정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으로는 한국을 찾을 수 없다’는 그의 자존심은 한국행을 쉽게 결정할 수 없게 했다. 하지만 영국과 터키를 떠도는 타국 생활에 지친 부인이 한국행을 권유했고, 14년 만인 2000년 모국 땅을 다시 밟았다.
 
▲초라한 귀국, 그리고 자살 위기
 
그러나 돌아온 청춘 스타를 맞은 것은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대중들의 무관심이었다. 무일푼인 그에게 어느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인기피증까지 겪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위의 도움을 받아 ‘얄개 만두’라는 체인점을 내고 마음을 잡으려고 했지만, 이번엔 연기에 대한 열정이 그를 가로 막았다. 연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업을 접고 영화사를 차렸다. 하지만 사기를 당했고, 그의 꿈은 또다시 무너졌다.
 
“사람들에게 질리더라고요. 같이 영화를 준비했던 후배와 죽으려고 면도칼 들고 한강에 갔어요. 다시 연기를 하려고 발버둥치는데, 배우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려고 하는데 세상이 절 안받아주더군요. ‘한때는 대우받고 살았는데, 망가졌다고 눈을 돌리는구나’라는 생각에 미치겠더라고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며
 
하지만 고진감래일까. 자살 위기까지 겪었을 정도로 깊은 나락에 빠졌던 그는 요즘 달라졌다. 연기자 복귀와 가수 도전을 앞두고 매일매일 노래 연습을 하고 한강을 뛰며 몸을 만들고 있다. 지금도 지인의 집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지만, 자신이 겪어온 어려움을 생각하며 월드비전을 통해 베트남 고아들을 돕는 일에도 나서고 있다.
 
가수 도전 뒤에는 본격적으로 연기도 재개할 계획이다. 그는 “연기는 마약과 같습니다. 들어올 때는 마음대로 들어와도 갈 때는 마음대로 못 가는 이유지요. 연기를 못 했더니 병이 생겼어요. 뇌 속에서 그 생각이 안 없어집니다. 연기자였다는 이유로 많은 고통도 겪었지만,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못 버릴 것 같습니다”라며 연기에 대한 진한 회한을 드러냈다. 시트콤을 통해 ‘얄개’스러운 옛 이미지를 살리고 싶다는 것이 그의 바람이다.
 
“세상을 모르니까 더 살기 힘들었던 것 같아요. 어느새 아들 녀석도 초등학교 5학년이 돼버렸어요. 저 때문에 고생한 아내한테는 항상 미안하죠. 옛 명성 따위는 잊은 지 오랩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신인의 마음으로 시작할 거에요. 이제는 좋은 남편, 아빠 노릇 좀 하고 싶어요.”

이현 기자 [tanaka@jesnews.co.kr]
사진=임현동 기자[hyundong30@jesnews.co.kr] [J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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