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3改閣 人選 어떻게 했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영삼대통령의 개각은 끝까지 비밀에 싸여 있었다. 최측근조차도 김대통령의 전화나 면담인사.개각 참고를 위한 인선자료등을 기준으로 짐작만 할뿐이었다.
이번 개각은 김대통령이 집권 중,후반기의 통치이념으로 내세운세계화를 기준으로 한 전문가와 행정경험을 중시한 세계화 내각.
실무형 내각이란 점이 특징이다. 상당수의 장관이 유임 또는 자리옮김을 했고,능력이 입증된 인물들로 짜였다는 얘기다.
김대통령이 그동안 내각과 청와대 비서진의 정책조정능력 부재등에 대한 비판 때문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청와대의 고위관게자는 이번 인선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김대통령의 인선기준이 처음부터 확고한것 같았다고 전했다. 12월초인사관련 자료를 올린뒤 김대통령으로부터 별다른 주문도 없었고 추가자료 요구도 없었다고 설명.
김대통령은 아예 이번 개각과 청와대 수석 인사에 대해 나름의방향을 잡아놓고 끝까지 밀고갔다는 얘기다. 민주계 일부의 발언 등 정치권의 발언이나 영향력이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추천된 인사와 김대통령이 집권2년동안 기용해본 인물들에대한 평가,그리고 김대통령의 심중에 있던 인물들 중에서 선택했다는 것이다.
박관용 청와대 비서실장은 여러차레에 걸쳐 퇴진의사를 워낙 강력히 피력해 이홍구통일부총리가 총리로 나간뒤에도 박실장의 통일부총리설은 금방 수그러들었다.
안기부장에는 김덕 부장의 유임설이 나돌다 보다 힘있는 안기부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서석재 민자당당무위원이 거론되더니 막바지에는 권영해 前국방장관으로 옮아갔다. 權前국방장관은 지난해국방장관 재임시 율곡사업.무기도입 때의 비리관련설이 있었으나 모두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장관재임시 군의 개혁에 공로가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金대통령이 제일 고민했던 대목이 서석재(徐錫宰)민자당당무위원과 박관용(朴寬用)청와대비서실장의 거취였다고 익명을 부탁한여권의 고위 관계자가 전언.
이 관계자는 『89년 동해시 보궐선거때 후보매수사건으로 정계2선에 머물러온 徐당무위원,문민정권출범과 함께 비서실장을 맡아4선의 금배지를 뗀 朴실장,이 두사람에 대한 「부담」을 金대통령이 어떻게하면 적절히 소화할수 있는지를 따져 보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그는 또 徐당무위원의 경우 이번이 정치 재기의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권력 핵심부 진입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했다.
민주계의 한 의원은 『金대통령은 徐위원에 대한 부담을 계파를따지지 않겠다는 인선의 원칙과 연관시켜 고민한 것으로 보인다.
徐위원은 朴실장이 부족한 대목이라고 할수 있는 장악력을 충분히보충하고 조정역할을 할수 있음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 그러나 민주계 내부의 질서문제에다 세계화 이미지 관리문제가 겹쳐 徐위원의 비서실장 기용은 거리가 있었고 결국 정무1장관쪽으로 배려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중량급인 朴실장을 아예 쉬게하는 것은 「인재 풀(pool)」관리에 부담이 된다는 점이 고려돼 청와대에 정치특보를 만들어 그 자리에 앉히기로 했다는 후문.
민주계의 등용폭도 관심을 끌었는데 金대통령이 『이번에는 과거를 불문하겠다』고 했을때 이미 민주계의 전진배치에서 2선배치로가닥이 잡혔다는 것.
특히 지난번 김덕룡(金德龍.서울서초을)의원이 「구여권(舊與圈)배제론」을 얘기했다가 金대통령으로부터 격한 어조의 꾸중을 들은뒤 민주계는 침묵과 함께 체념상태를 보였다.
○…비대(肥大) 부서인 재정경제원을 홍재형(洪在馨)경제부총리가 맡게될 것이라는 점은 그의 성실성에다 金대통령의 신뢰가 크기 때문이라는게 중론이나 『한이헌(韓利憲)경제수석과의 관계설정문제도 고려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여권(與圈)의 또다른 관계자가 설명.
물망에 올랐던 강경식(姜慶植.민자.부산동래갑)의원.진념(陳稔)前동자부장관이 후퇴한 것은 두사람이 韓수석의 기획원선배인데다업무 추진력.장악력면에서 스타일이 비슷해 협조보다 갈등관계가 될 것이라는 점이 걸렸기 때문으로 이 관계자는 분석.
추경석(秋敬錫)국세청장은 한때 건설교통장관으로의 이동설이 나돌았으나 안정적으로 업무를 꾸려간다는 평가가 나와 유임쪽으로 굳혀졌다.
○…한승수(韓昇洙)주미대사의 발탁 가능성은 두달전부터 金대통령이 「영어도 잘하고 경제도 잘아는」사람을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일찍부터 「0순위」에 진입.
특히 일본의 『文藝春秋』에 「워싱턴에 많은 외국대사가 있으며그중 韓대사는 잘하고 있는데 일본대사는 그만큼 못하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이내용을 金대통령이 기억하고 있다는 얘기가 정치권에 나돌았다.
내무장관에는 김우석(金佑錫)건설장관이 유력한 것으로 점쳐지다가 22일 저녁 민주계 핵심실세 인사가 『내무는 민주계가 아니다』고 해 막판에 혼선.
내무장관은 지자체 선거를 치러야한다는 점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면서 최인기(崔仁基)농림수산장관의 발탁설이 나왔다.
때문에 개각설 초반에 거명됐던 金장관이 민주계 핵심실세의원의부인에도 불구하고 다시 부상하는등 반전에 반전을 거듭.
〈朴普均.金斗宇.李年弘.金鉉宗.李相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