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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정권 대입제도 전반 신뢰 추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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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뉴스 분석 수능 출제와 채점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정답 번복과 재채점 사태로 평준화 등급제 수능은 물론 전반적인 대입제도의 신뢰성이 바닥까지 떨어졌다. 노무현 정권이 수험생, 학부모, 고교, 대학의 반대를 무시한 채 강행한 9등급제 수능은 고교와 대학에서 극심한 혼란을 일으켰다. 한 문제 차이로 등급이 갈리고, 총점은 높지만 등급 평균은 낮은 불합리한 일이 속출한 것이다.

교육부나 평가원이 물리II 11번 문제에 대한 수험생들의 이의를 묵살한 것도 이런 등급제 수능의 특성 때문이다. 비록 한 문제지만 복수정답을 인정할 경우 해당 과목의 모든 등급이 뒤엉키고, 다른 과목을 선택한 학생과의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교육당국이 모를 리 없다. 22일 한국물리학회가 "정답은 두 개"라고 발표했는데도 "교육 과정과 교과서 범위에서 정답은 하나"라고 옹색한 변명으로 일관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평가원 관계자는 "등급까지 발표된 마당에 어떻게 출제 잘못을 인정하느냐"며 "수험생들이 소송을 걸면 개별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교육부 관계자들 역시 "평가원의 입장을 존중한다"며 뒷짐만 지고 있었다. 등급제 수능을 지키려는 교육부 등의 이런 노력은 걷잡을 수 없는 비난 여론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일부 수험생들은 "집단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강정 평가원장은 24일 기존 입장을 번복하고 복수정답을 인정하는 방안을 김신일 교육부총리에게 보고했다. 교육부 입시담당 관계자들도 이날 대책회의를 거듭한 끝에 "뒤늦게라도 출제 잘못을 인정하는 게 더 큰 파문을 막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이번 입장 번복이 또 다른 역차별을 낳는다고 반발하고 있다. 2008년 대입을 둘러싼 혼란은 좀처럼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1994년 수능이 시행된 이후 복수 정답이 인정된 것은 2003년 수능에서 한 번 있었다. 하지만 성적 발표가 다 끝난 뒤 정시모집 원서접수 기간 중 복수 정답이 인정되고, 성적표가 다시 발부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강대 김영수 입학처장은 "이처럼 등급제 혼란에다 성적 재처리 소동까지 일면서 평준화 등급제 수능의 신뢰도는 추락했다"고 말했다.

올해 수험생들은 이러한 정부의 대입 실험 과정에서 고통을 당해야 했다. '저주 받은 89년생'으로 불리기도 하는 현 고3 학생들은 고1 때는 상대 평가 내신제, 고2 때는 통합교과형 논술 도입, 고3 때는 평준화 등급제 수능 등의 혼란을 몸으로 겪었다.

이들의 고통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서울대는 23일, 포스텍은 24일 이미 원서를 마감했다. 상당수 대학들이 25, 26일 마감할 예정이다. 등급 재산정, 성적표 재발부 등의 절차를 거쳐 자신의 성적을 확인한 물리Ⅱ 응시 수험생들은 혼란 속에서 대학을 골라야 한다.

강홍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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