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목기자의뮤직@뮤직] 신승훈, 일본인의 감성에 연착륙하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신승훈의 첫 일본 크리스마스 콘서트가 열린 20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 아레나에 들어섰을 때, 과연 이 광활한 객석이 가득 찰까 의구심이 들었다.

하지만 1만2000여 객석은 빈틈없이 메워졌다. “신승훈”을 연호하는 파란 형광봉도 파도처럼 너울거렸다.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공연할 수 있는 가수는 일본에서도 1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의 일본 활동은 일본 기획사에 의해 J-POP 스타로 키워지는 아이돌 스타 보아나 동방신기와는 다르다. 드라마의 성공에 힘입어 한류 가수로 거듭난 류시원·박용하·안재욱 등과도 다른 차원이다.

신승훈은 지금 일본에서 ‘아티스트 한류’라는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물론 신씨에게도 한류에 ‘편승’할 기회는 있었다. ‘아이 빌리브(I Believe)’가 OST로 사용된 영화
‘엽기적인 그녀’가 일본에서 히트했을 때다. 하지만 그는 3년 뒤인 2005년에야 일본 시장을 노크했다. 한류가 아닌, 신승훈 표 K-POP으로 일본에 이름이 알려지길 원했기 때문이었다.

신승훈은 무엇보다 먼저 일본에 K-POP을 알린 뒤에 일본어 노래를 부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 발매 앨범에 ‘미소 속에 미친 그대’ 등 국내 히트곡들을 담았다. 그리고 방송 출연 대신 공연으로 자신의 음악을 알렸다. 그가 최근 일본에서 발매한 미니 앨범의 곡 ‘송 포 유(Song for you)’도 자작곡이다. 신씨가 일본어로 작사·작곡한 첫 노래다. 이 노래는 오리콘 차트 15위까지 올랐다.

공연 직전 열린 현지 간담회에서 한 일본 기자는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일본에 상주하지도 않고, 프로모션 정도만 하는 한국 가수가 자신이 만든 일본어 노래로 오리콘 차트 15위에 오른 것은 무척 경이로운 일이다”라고.
 국내에서 인정받는 아티스트가 음악 강국인 일본에서 성과를 낸 것은 80년대 조용필에 이어 두 번째다. 일본 최대의 음반 유통사인 에이벡스는 올 3월 신씨에게 손을 내밀었고, 해외 아티스트 자격의 계약서도 제시했다.

신승훈은 사실 1990년대 말부터 일본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한국어를 배우던 일본인들은 그의 음악에 매료돼 삼삼오오 한국으로 건너오기도 했다.

그가 일본에서 인기를 끄는 요인은 무엇일까. 신승훈은 일본인들이 잊고 있던 아날로그 정서를 건드린 게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드라마 ‘겨울연가’가 청춘의 무구한 사랑을 다룬 것처럼 그의 노래는 우리의 보편적 감성을 울린다는 것. 초현실적 가사, 서구적 리듬이 우세한 일본 가요계에서 인간 본연의 희로애락을 서정적으로 읊어온 그의 진가가 인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날 공연에서 록 요소가 강한 일본 노래 ‘사요나라’를 신승훈 식으로, 즉 애달픈 듯 구성지게 리메이크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그가 ‘송 포 유’를 부를 때는 모든 관객이 일어서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였다.

‘송 포 유’는 신씨가 일본 디즈니 테마파크의 벤치에서 폭죽놀이를 보다가 악상이 떠올라 10분 만에 만든 노래다. 신승훈의 동화적 감성이 번뜩이기 때문에 J-POP이라기보다 ‘신승훈표 일본어 노래’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노래에서 느껴지는 깃털 같은 자유로움과 열린 마음은 앞으로의 그의 음악세계를 내다보는 작은 단초가 될 듯하다.

신승훈은 국내에서 17년간 10장의 앨범을 냈다. 그는 새로운 각오로 또 다른 10장의 앨범을 준비하겠다고 다졌다. 공연 뒤풀이 자리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왜 이 나이에 일본까지 와서 고생하냐고 하지만, 일본에서 신인처럼 부딪치고, 무대에서 떨기도 하는 이런 경험은 돈 주고도 못해보는 귀한 것이죠.”
 
자신의 노래에 대한 믿음 하나로 일본 시장에 뛰어든 신승훈. 돌고 돌아 3년 만에 일본 주류 음악시장에 연착륙했다. 과거의 명성보다 신인의 도전을 강조해온 게 에너지가 됐다. 그의 또 다른 내일에 대한 신뢰감을 주는 대목이다. <요코하마에서>

정현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