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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Blog] 총 거두고 적과 함께 부른 캐럴 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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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메리 크리스마스~.
 

성탄절입니다. 세상에 평화를 가져온 아기예수의 뜻이 새롭습니다. 꼭, 기독교인일 필요는 없겠죠. 서울 조계사도 성탄축하 현수막이 걸렸습니다. 오늘 전국에는 흥겨운 캐럴이 메아리 치겠죠. 좋은 날입니다.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 들러보기를 권합니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감독 크리스티앙 카리옹)를 만날 수 있죠. 성탄의 참뜻을 살펴보는 계기가 됩니다. 실화를 극화해 더욱 피부에 와 닿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독일군이 점령한 프랑스 땅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100m도 안 되는 거리를 두고 대치하던 스코틀랜드·프랑스·독일군이 총부리를 거두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함께 부릅니다. 각군 장교가 단 하루의 휴전협정을 맺었던 거죠. 상부의 동의도 없이 말입니다.

원수처럼 싸우던 각국 병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한 형제가 됩니다. 초콜릿과 샴페인을 나눠 먹고, 가족 사진도 교환합니다. 눈 내린 전장에서 함께 성탄미사도 올리죠. 스코틀랜드군의 백파이프 연주에 독일군이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을 노래하는 모습, 남편(베를린 오페라하우스 소속 테너 가수)을 따라온 독일군 아내(역시 유명 성악가)가 ‘아베마리아’를 열창하는 장면 등이 머리에 쏙쏙 박힙니다. ‘생큐’ ‘당케’ ‘메르시’를 주고받는 모습도 정겹죠. 언어는 달라도 역시 음악은 하나입니다.

성탄절 당일, 병사들은 더 큰 ‘사고’를 칩니다. 먼저 간 동료들의 무덤을 함께 만들고, 십자가도 세워줍니다. 그리고 축구경기를, 카드놀이를 즐기죠. 보스니아 내전을 다룬 ‘노 맨스 랜드’와 한국전쟁의 비극을 풍자한 ‘웰컴 투 동막골’을 잘 섞어놓은 듯한 느낌입니다. 전쟁의 무모함을 비웃고, 세상의 평화를 희구하는 거죠. 피 터지는 전장에서도 유머와 여유를 잃지 않는 사람들의 유쾌한 반역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동화가 아닙니다. 영화 앞뒤에 혹독한 현실을 삽입했죠. 상대국을 “지도에서 없애야 한다”고 전의를 태우는 각국 초등학생의 웅변이 섬뜩합니다. “예수는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독일에 대한 ‘성전(聖戰)’을 독려하는 스코틀랜드 주교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너는 (전쟁·현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아버지(프랑스 장군)에게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종교”라고 대답하는 프랑스 장교는 또 어떻고요.
 
아기예수의 평화는 진정, 쉽게 얻어지는 게 아닌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걸까요. 다시 한번 불러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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