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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화가 세계경제통합 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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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헤어졌다가는 모이고,모이면 다시 헤어진다(離合集散).』 『삼국지(三國志)』에 나오는 이 말은 오늘날 세계경제를 특징짓는두가지 현상을 일찍이 예언하고 있다.
「블록화와 통합화」가 바로 그것이다.
세계경제의 판도는 한편으론 내년부터 출범하는 세계무역기구(WTO)체제를 정점으로 하는 다자간(多者間)무역질서를 추구하면서도,다른 한편으론 유럽연합(EU)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등 지역적으로 배타적인 블록을 형성하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
다같이 무역자유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한쪽은 전세계가 다같이 무역장벽을 낮추자는 주장이고,다른 쪽은 자기네들끼리 뭉쳐 따로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니 헷갈리기 짝이 없다.그러나 언뜻 서로모순되는 듯한 이 두갈래 흐름은 90년대 세계 경제를 규정하는엄연한 현실이다.
문제는 이같이 대립적인 추세가 과연 언제까지 양립(兩立)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그 해답은 전혀 의외의 곳에서 찾아지고 있다.바로 블록화의 확산이 세계경제의 통합화를 촉진하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0월 싱가포르의 고촉통(吳作棟)총리는 프랑스를 방문한자리에서 동남아국가연합(ASEAN)과 EU간 정상회담을 제의하고 나섰다.이에대해 EU집행위측도 긍정적인 자세를 보여 내년 말께엔 EU-ASEAN정상회담의 성사가능성이 높 아지고 있다.
EU는 지난 9일 독일 에센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對아시아관계강화 방침을 확인하고 집행위에 구체적인 협력방안을 강구토록 촉구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미주(美洲)정상회담에서는 오는 2005년까지 남북미를 통틀어 범미(汎美)자유무역지대(FTAA)를 창설하는 방안을 확정키로 했다.
미주지역에는 이미 NAFTA를 비롯,남미의 남부공동시장(MERCOSUR)등 크고 작은 자유무역협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특히 칠레는 올해 亞太경제협력체(APEC)에 가입한데 이어NAFTA 가입방침이 확정되는등 대륙을 넘어서는 블록화의 확산에 열심이다.이렇게 되면 이제 폐쇄적이고 고립된 지역별 블록화는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지역별로 벌어지고 있는 블록의 확대는 자유무역의 변경을 점차넓혀가고 있다.여기에다 블록對 블록으로 추진되는 자유무역협정의물꼬가 터질 경우 배타적인 블록의 벽은 스스로 허물어질 수밖에없다. EU와 ASEAN,MERCOSUR와 EU,FTAA의 창설,APEC의 확대등이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세계경제의 통합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블록간 통합이 단시간내에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아직은 희망적인 싹에 불과하지만 배타적인 지역주의가 경제논리에 의해 스스로 통합화의 길로 들어선 것만은분명하다.
〈金鍾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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