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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첸사태와 러 정국의 향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체첸에 새로운 통치자를 임명함으로써 이제 조하르 두다예프 정권의 몰락은 기정사실화됐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체첸 무장세력들에 의한 저항과 이웃 일부 동조세력들의저항이 이어지기는 하겠지만 러시아의 물리력이나 체첸내부의 복잡한 문제를 감안하면 러시아의 새로운 통치체제가 체첸에 성립되는것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옐친의 의도대로 두다예프 정권을 무력화시키고 실각시키게됐다 해서 옐친의 골칫거리가 해결됐으며 옐친이 정치적인 이득을 얻었다고 볼 수는 없다.
러시아는 체첸사태를 잘못 처리할 경우 연방내 소수민족공화국의반발등 후유증이 거셀 가능성이 있어 직할통치보다 우마르 아프투르카노프가 이끄는 반군임시위원회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럴 경우 임시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옐친의 정적이었던 루슬란 하스블라토프가 체첸의 실질적인 지도자로 부각할 수도있어 체첸사태는 중앙정치의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
하스블라토프는 체첸의 러시아 연방내 잔류를 강력하게 희망하고는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옐친과 대립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체첸사태가 무력을 동원한 진압방식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96년 대권을 노린 개혁세력의 일부가 옐친을 각하하는 운동을 펼칠 가능성이 높아 원내에 자신의 당이 없는 옐친에게 또다른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이미 96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옐친의 후계자 지명경쟁에서밀려난 것으로 판단한 예고르 가이다르(러시아의 선택당 당수)는옐친을 공개비난하고 나섰고,유리 리즈코프 모스크바 시장을 비롯한 새로운 독자후보 옹립그룹도 옐친에 등을 돌 리려는 움직임을보이고 있다.
물론 이번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내 여론들이 모두 옐친에 등을돌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의 반응과는 달리 그동안 체첸 마피아들의 횡포에 시달려왔던 러시아계 민족들은 옐친의 체첸진압에 묵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고 군부와 민족주의 지도자들도 옐친을 지지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이유를 들어 현재 크렘린 관측통 사이에는 러시아의 급격한 정국개편 가능성이 도래했다는 의견들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크렘린 내부에 정통한 소식통들에 의하면 지금까지 숱하게 96년 대선에서의 승리여부를 놓고 고민해왔던 옐친 지지파들은 이 기회에 의회의 해산과 대선연기를 주장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옐친이 어떤 결정을 내릴 지는 알 수 없다.
오히려 이번 사태로 한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연방방첩부.내무군.군등 물리력 행사 집단을 완전히 장악한 옐친이 자신의 원래 약속대로 조기대선을 실시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옐친은 지난해 10월 의회를 무력으로 진압한 후 조기대선을 실시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바 있다.
이럴 경우 지난 10월 사태후 의회에의 진출기회를 박탈당했던루츠코이 전 부통령 그룹과 역시 조기대선을 주장해왔던 지리노프스키,그리고 공산당등이 찬성을 할 가능성이 높고 러시아 정국은연말과 내년 연초를 기해 또한번 12월마다 바 쁜 러시아 정치의 징크스를 반복해 낼 가능성이 높다.
〈金錫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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