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아이들의 잔혹한 ‘네버랜드’- 헨젤과 그레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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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호 14면

그림(Grimm) 동화는 잔혹하게 끝나는 이야기가 많다. ‘헨젤과 그레텔’도 마찬가지여서 아동 유기(遺棄)에 더해 어린 남매가 힘을 모아 어른 하나를 화덕에 구워버리는 잔인한 살인까지 담고 있다.

그러므로 영화 ‘헨젤과 그레텔’이 임필성 감독의 설명대로 ‘잔혹 동화’가 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잔혹함 이상의 무언가가 있어야 할 것이다. 수백 년 동안 다른 이들이 이 동화에서 발견하지 못했던 무언가, 혹은 발견했으나 다르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 무언가가. ‘헨젤과 그레텔’은 버려진 아이들의 슬픔, 그로부터 자라난 분노와 원한이 그것이라고 말하려는 듯하다.

자동차 사고로 정신을 잃은 은수(천정명)는 한밤중 숲 속에서 깨어나 영희(심은경)라는 여자 아이를 만난다. 그 아이의 집에는 어딘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부모와 함께 오빠 만복(은원재)과 동생 정순(진지희)이 살고 있다. 다음 날 길을 나선 은수는 하루 종일 숲을 헤매다가 다시 그 집으로 돌아오고, 그 다음 날 부모는 아이들을 부탁한다는 쪽지만 남겨놓은 채 사라진다.

외부와 단절돼 있는데도 화려한 과자와 케이크가 가득한 집안, 아무리 애를 써도 벗어날 수 없는 숲, 집과 숲 여기저기 흩어진 죽음의 흔적. 불안해하는 은수 앞에 만복의 손에 이끌려 찾아온 길 잃은 부부가 나타난다.

무언가 비밀이 있는 듯하지만 사실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에 커다란 비밀은 없다. 그보다는 스스로 동화의 세계를 창조하고 그 안으로 어른들을 끌어들이는 아이들의 슬픔, 버림받아 본 적이 있기에 유일하게 그 슬픔에 공명할 수 있는 은수의 연민 같은 정서가 더욱 두드러진다. 문제는, 영화는 두 시간이라는 사실이다.

몇 쪽에 불과한 동화의 스토리와 정서적인 분위기만 가지고 두 시간을 버티다 보니 비슷한 대사와 상황이 수도 없이 반복되곤 한다. 이상한 집에 갇혀버린 폐소공포증이 본의 아니게 생생하게 전달될 정도다. 아니, 어쩌면 의도된 답답함이었을까? 스토리 밑바탕에 깔려 있는 미스터리도 그리 복잡하지 않아 한참 만에 진실을 깨닫고 놀라는 은수를 보면 오히려 관객이 놀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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