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형 DNA 대통령 <하> CEO+시장 블룸버그 뉴욕을 적자서 흑자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캠프에는 서울시 출신의 실무자들이 유난히 많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2002년 서울시장 선거 때 '청계천 복원'에 반대한 공무원이 대부분이다. 어떻게 닳고닳은 서울시 국.과장들의 마음을 얻었을까.

2004년 총선 다음날 서울시 간부회의. 이 당선자가 입을 열었다. "행정.기술고시 출신이라도 서울시에 오면 2류 공무원으로 자조하는 것 같다. 그러나 여러분은 이제 인생 2모작이 활짝 열린 행운아다." 그의 총선 분석은 독특했다. "지구당 경선 제도가 도입돼 지역 뿌리가 중요해졌다. 서울시 국장들은 부구청장으로 나가 지역기반을 닦을 수 있으니 다른 중앙부처보다 훨씬 유리하다. 일만 잘하면 내가 총선.구청장 선거에 나가도록 도와주겠다…." CEO 출신답게 그는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이후 새벽부터 청계천.대중교통노선 현장을 찾는 국.과장들이 부쩍 늘었다.

세계적으로 CEO 출신 정치 지도자의 행보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실용주의와 과단성.투명성이란 장점을 잘 살린 지도자는 성공했다. 반면 자신과 주변 관리에 실패한 경우도 적지 않다.

월가의 바닥에서 시작해 블룸버그통신 CEO에 오른 마이클 블룸버그. 그를 2001년 시장에 뽑아놓고도 뉴욕 시민들은 반신반의했다. CEO 출신답게 그의 취임 일성은 "적자 뉴욕을 흑자로 돌려놓겠다"는 것이었다. 시 정부의 군살을 확 빼고 월트디즈니의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해 뉴욕시를 전 세계에 알렸다. 한때 60억 달러 적자였던 뉴욕시 재정은 올해 35억 달러 흑자로 돌아섰다. 2005년 재선된 그는 지금 CEO와 시장을 모두 거친 첫 미국 대통령을 꿈꾸고 있다.

이 당선자도 CEO 출신답게 대선 유세에 최신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미국 GE의 '타운 미팅'이다. 타운 미팅은 CEO가 현장에 가서 문제를 듣고 즉석에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경영방식이다. 이 당선자는 대규모 정치집회 대신 민원인이 모인 곳을 찾아가 공약에 반영했다. 경원대 최성섭 교수는 "정치와 행정조직도 실용성과 효율성을 추구한다"며 "한발 앞선 민간기업 경영방식을 따라가는 게 세계적 추세"라고 말했다.

이 당선자는 서울시장을 거치면서 행정경험까지 갖췄다. 미국 로널드 레이건과 빌 클린턴 대통령, 독일 헬무트 콜 총리, 프랑스 자크 시라크와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모두 성공적인 주지사.시장 업적을 밑거름 삼아 정상을 밟은 인물들이다.

문제는 CEO 출신 정치 지도자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부정부패와 관련된 갖가지 구설수가 그것이다. 2001년 태국 총리가 된 탁신 친나왓도 그랬다. 그는 태국 최대 정보통신그룹 '친 코퍼레이션' CEO 출신이다. 처음엔 외환위기에 빠진 태국 경제를 살려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2005년 재선 후 자기 회사에 특혜를 주고, 세금을 떼먹었다가 들통나 총리에서 쫓겨났다.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캐나다 폴 마틴 총리도 CEO 출신의 실패한 정치가들이다. 모두 특혜.탈세가 낙마 배경이었다.

연세대 최평길 명예교수는 "CEO형 DNA는 도덕성이 뒷받침될 때 빛을 발한다"며 "권력과 재산,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간 훌륭한 국가 지도자가 되기 어렵다는 게 역사의 교훈"이라고 말했다.

정경민.박혜민.윤창희.손해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