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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코펜하겐'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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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토론토에 들렀다가 연극 '코펜하겐(Copenhagen)'을 보았다. 영국의 작가 마이클 프레인(Michael Frayn)의 작품인 코펜하겐은 1998년 런던에서 초연한 이래 유럽의 각국에서 공연됐으며, 2000년에는 뉴욕에서 대 호평을 받고 브로드웨이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의 작품상과 연출상을 받았다.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은 양자 물리학의 '메카'였다. 1920년대에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천재적인 젊은이들은 닐스 보어의 코펜하겐 연구소에서 양자 물리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만들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와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코펜하겐 해석의 핵심이었다.

시간이 흘러 41년이 되면 하이젠베르크는 승승장구하던 독일의 핵분열 프로그램을 지휘하는 책임자가 된 반면, 보어는 점령국의 반(半)유대인으로 힘들게 살고 있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이젠베르크는 코펜하겐으로 옛 스승이자 친구인 보어를 찾아간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눈 대화는 보어를 무섭게 격앙시켰다. 연극 코펜하겐은 보어의 부인 마그레테의 독백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왜, 41년 9월에 하이젠베르크가 보어를 찾아 코펜하겐에 왔는가?" 이 질문은 연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수차례 반복된다.

하이젠베르크 자신은 옛 스승인 보어에게 "과학자가 핵분열의 결과에 대해 연구를 계속할 도덕적 권리가 있는가"를 물었을 뿐인데, 이를 오해한 보어가 벌컥 화를 내고 대화를 중단했다고 술회했다. 이 얘기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의문은 남는다. 하이젠베르크가 이런 얘기를 던진 의도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서는 하이젠베르크가 미국과학자들과 교류가 있었던 보어로부터 미국의 원자탄 기밀을 캐내려 한 것이 진짜 목적이었다는 해석도 있으며, 정반대로 하이젠베르크가 독일의 원자탄 개발이 잘 안 되고 있다는 사실을 연합군에 넌지시 알려주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또 하이젠베르크가 보어를 설득해 독일과 미국 모두의 원자탄 계획을 지연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41~44년에 하이젠베르크가 독일 점령지역을 여덟 차례나 방문, 독일이 승리해야 하는 필연성을 선전하고 다녔다는 사실에 주목해 41년 코펜하겐 방문의 목적도 이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연극 코펜하겐은 이 중 어느 하나의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연극의 묘미는 "왜 41년 하이젠베르크가 코펜하겐으로 보어를 방문했는가?"라는 문제를 깊게 파고들면 들수록 하이젠베르크의 동기와 행동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발견한 원자 세계에서의 불확실성과 인간 삶에서의 불확실성의 기묘한 대비는 연극 전체를 관통한다. 작가 프레인은 "삶은 항상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기묘하다"고 말하는데, 41년 9월의 코펜하겐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인간의 행동과 동기의 다층성.미확정성.비예측성이 관객을 연극에 몰입시킨다.

이런 의미에서 코펜하겐은 단순한 '과학 연극'은 아니다. 과학자.과학이론.과학사의 사건이 연극의 소재로 쓰이지만, 연극의 핵심적인 모티브는 사람의 행동이 유발하는 수많은 해석, 이로부터 발생하는 다양한 가능성, 이러한 미래의 가능성이 결국 하나의 현재와 과거로 귀결되는 인간사, 그리고 그렇게 닫혀버린 과거를 다시 열 때 갑자기 부닥치는 해석의 유연성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연극은 연쇄반응, 상보성 이론, 불확정성 이론은 물론 독일 원자탄 개발에 대한 약간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어야 그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작가의 역량도 관객의 감상의 깊이도 과학과 인문학에 대한 '잡종적'인 소양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한 극단이 '코펜하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3월에 공연을 시작하려던 계획을 연기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획이 취소된 것이 아니길 바라면서 우리도 이 흥미진진한 연극을 무대에서 곧 보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홍성욱 서울대 교수.과학기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