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세계화이제는실천이다>9.값싼 애국심은 안통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국산품 애용」은 한 시절의 애국심을 상징하는 구호다.
무조건 국산품을 사주는 것이 국가 재건(再建)의 원동력임을 믿고 실천했던 60년대 소비자들은 자신들이 일궈 낸 경제성장의결과로「산업사회의 소비자이익」개념이 몸에 밴 90년대「신(新)소비자」들을 길러냈다.
우루과이 라운드(UR)파고(波高)에 맞서는 우리 농촌의 구호조차 이제 막연한「애국심」에 무작정 호소하고 있지는 않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막연한 애국 구호가 아니라 우리 몸에는우리 농산물이 더 맞는다는,일종의「소비자 유인(誘引)」이며 또그래야 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한국의 농산물 개방이 뭐 그리 큰 문제인가.
』 신토불이에 대한 이반 자하르첸코 타스 통신 서울 특파원의 이같은 언급에 대해서도 분개하지 말고 떳떳한 논리를 훌륭하게 개발해야하는 것이 요즈음의「복잡한 애국」이기도 하다.
〈梁在燦기자〉 이런 시대에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마주치는 다음과 같은 일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공무원들은 여행사를 통하는 것 보다 비행기 삯이 비싼 대한항공(KAL)을 타야만 합니까.』 외무부 산하 국제협력단 이철환(李哲煥)지역2부장은 지난해 미국 오리건州 유진市로 출장 가며 어이없게도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기다린 시간이 정작 비행기를 타고 간 시간만큼 길었던 사실을 기억한다. 『유진시는 포틀랜드 공항에서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입니다.그런데 서울에서 포틀랜드까지의 델타 항공 직행편이 있는데도 공무원은 KAL을 타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비행기를 세번이나 갈아타야 했고 아까운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비행기를 타야 한다는「값싼 애국심」때문에 예산을 더 축내면서 비행기를 바꿔타야 하고 공항에 멍청하니 앉아 귀중한 시간을 보내는「비싼 대가」를 치르는 셈이다.
이같은 일은 그래도 애국심의 비용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경우다.그러나 다음과 같은 경우는 훨씬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도그 실상이 잘 알려지지 않고 넘어가기 일쑤다.
올해 초 시끌벅적했던 미국산 소시지 수입 시비는 별 생각없이「국익(國益)」을 생각하고 나섰다가 얻은 것은 없이 상대방의 감정만 자극하고 도리어 우리쪽 규정을 뜯어 고치는 결과를 빚고만 경우다.
미국산 소시지는「열처리를 하지 않은 냉동(冷凍)」소시지로 분류돼 90년부터 90일의 유통기간을 적용해 3년동안 별 문제없이 수입돼 왔다.
그런데 올 3월 보사부에서 문제의 수입 소시지가 냉동은 되었지만「열처리」된 것임을 뒤늦게 발견,「열처리된 것은 냉장(冷藏)상태에서 30일」이라는 규정을 적용해 미국산 소시지의 통관을갑자기 막기 시작했다.
보사부는 8년전 식품 공전(公典)에 소시지등 식육제품의 유효기간을 새로 넣으면서 열처리된 것은 냉장상태에서 30일,비가열냉동 소시지는 90일로만 정해 놓았으며 미국산 소시지와 같은「열처리+냉동」소시지에 대한 규정은 두지 않았었다 .
결국 우리는 가열 냉동 소시지 항목을 신설해 유통기한을 90일로 고치기로 미국측에 약속하고 말았다.
소시지 건에 대한 상공자원부 관계자의 다음과 같은 지적에 우리는 귀를 기울일 만하다.
『소시지는 공연히 미국 통상.농무 관계자들에게 한국 정부를 못믿겠다는 식의 부정적인 인식만 키워 급기야 자동차 시장의 추가 개방,미국통상대표부(USTR)의 한국 육류수입 관련 제도에대한 불공정 여부 조사 결정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 자동차도우리의 소비자들이 그간 무던히 애국심을 발휘해 준 대표적인 품목이다. 그간 같은 한국산 자동차라도 수출용과 내수용은 강판의두께나 안전성.내부구조등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그나마 내수용 자동차를 한대 사려면 몇달씩 줄을 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모자라 이제 몇년 안에 미국에서 생산된 일본 자동차가 한국에 수입될 것이 뻔한 마당에「국내 산업 보호」라는 애국적인 정서를 등에 업은 논리가 자동차 산업의 신규 진입 문제를그토록 풀기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 나들이길에 사오던 일제 코끼리표 전기 밥솥은 큰 선물이었다.
단속을 해도 여간해 사라지지 않던 공항 통관대의 코끼리표 밥솥은 국산품이 일제에 못지 않게 나오고서야 비로소 없어졌다.운반하기도 고약스러운 밥솥을 사들고 공항 세관 검사장을 가슴 조이며 지나가는 여행객이 없어진 것은 애국심 때문이 아니라 바로품질 때문인 것이다.
강경식(姜慶植.민자)의원은『국산품을 애용하자고들 하는데 이제국산품의 정의(定義)가 무엇인지도 다시 따져봐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온통 외국산 부품 투성이인 제품도 국산이라고 한다.이제는 소비자 이익을 기준으로 따져야한다.한우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자.소가 먹는 사료는 외국에서 들여오고 있으니 남는게 뭔지 주판알을 튀겨보는 손익계산이 필요 하다.외국에서 쇠고기를 수입하는게 싸다면 과감히 그렇게 해야 한다.참깨도 우리 소비자들은 외국보다 수십배 비싼 값으로 사먹고 있다.
』 세계화를 이야기하려면 정치인이든,기업인이든 이 정도의 생각은 실천에 옮겨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