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탈레반·BBK·신정아 … 이명박 '파란과 행운의 538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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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해 6월 30일 서울시장 퇴임 이후 본격적인 선거 레이스에 들어갔다. 12월 19일 대선까지 17개월538일간 파란과 소용돌이의 대장정이었다. 그 과정에는 운도 따랐다.

선거 사나흘 전에 터진 이른바 '이명박 동영상' '이명박 특검법 통과' 사건은 이 당선자가 2000년 "내가 BBK 설립자"라고 말한 것으로 정동영.이회창 후보가 대역전의 계기를 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명박 지지층이 결집한 계기가 됐다. 동영상이 폭로된 과정이 공갈 범죄 수법이어서 이 당선자가 동정표를 얻은 모양새가 됐다. 특검법이 통과되자 위기를 느낀 지지층이 더 강력하게 뭉쳤다는 분석이다.

1992년 대선 때 김영삼 후보 측이 도청을 했는데도 오히려 이를 폭로한 정주영 후보 측이 역풍을 맞은 '초원복집 사건'과 비슷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 중 심대평 국민중심당 후보가 사퇴하고 이회창 후보에게 합류해 이 당선자가 충청 지역에서 큰 위기를 맞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배후에 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이명박 공개 지지→한나라당 입당을 낳아 이 당선자의 세를 불리는 계기가 됐다. 11월 중순 대선의 '마지막 뇌관'으로 불리던 BBK 김경준씨가 귀국해 온 국민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렸다. 이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후보를 코너로 몰아 넣었던 자녀의 '위장 취업'사건이 묻혔다. BBK 사건은 어렵고 '위장취업' '위장전입' 사건은 쉽다. 김경준씨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게 되자 반이명박 측의 '위장 시리즈' 공세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박근혜 전 대표와 치열하게 싸웠던 한나라당 경선 시절인 7월 중순, 대통합민주신당 김동철 의원이 "도곡동 땅 실소유주가 이명박 후보라는 김만제 전 의원의 감사원 진술이 있다"고 공개해 파란이 일었다. 이 당선자와 김만제 전 의원은 부인했지만 '감사원 진술서'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바로 그날 저녁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 사건이 터졌다. 그로부터 한 달 가까이 경선 네거티브 공방전은 언론의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렸다. 정치권에선 "탈레반이 이명박 후보를 도왔다"는 얘기가 나왔다.

지난해 10월 9일 북한이 핵실험을 했을 때 나라는 큰 위기를 맞았다. 그렇지만 이 당선자는 그때 경쟁자였던 박근혜 전 대표와 지지율 역전을 만들어 냈다. 그때 1위로 오른 뒤 한번도 1위를 빼앗기지 않았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북핵 위기가 유권자 정서에 '아무래도 여자는 안보 위기를 헤쳐나가기에 문제가 있지 않은가'라는 인식을 심어준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당선자의 선거운동 주요 사건을 조인스(www.joins.com) 풍향계 여론조사(리서치 앤 리서치 실시)를 통해 살펴봤다.

① 한반도 대운하로 '붐 업'

이 당선자는 박근혜 전 대표에 이은 지지율 2위로 대선 레이스를 출발했다. 지난해 7월 5일 조사에서 그의 지지율은 21.5%였고, 박 전 대표는 27.8%였다.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이 당선자는 8월부터 직접 예정지를 탐사하며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알리기에 나섰다. 찬반 여부를 떠나 한강과 낙동강을 잇겠다는 발상에 국민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지지율도 따라 상승했다(8월 23일 조사 박근혜 25.5%, 이명박 24.2%).

② 손학규 탈당의 득과 실

손학규 전 지사의 한나라당 탈당(3월 19일)은 이 당선자에게 당시엔 손해였다. 손 전 지사는 탈당하면서 상대적으로 이 당선자를 더 비난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론 그의 탈당이 이 당선자에게 득이었다. 두 사람의 지지층이 겹치기 때문이다. 그가 끝까지 남아 한나라당 경선이 '빅 3' 경쟁으로 진행됐다면 표가 갈려 박 전 대표에게 한나라당 후보 자리를 넘겨줬을지 모른다.

③ 4월 재.보선 참패

4.25 재.보선에서 참패하면서 한나라당은 지도부 해체 논란에 휩싸였다. 이 당선자의 최측근인 이재오 당시 최고위원은 "나부터 그만두겠다"며 이 논쟁을 이끌었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15시간 '마라톤 대화' 끝에 이 최고위원을 주저앉혔다.

이 당선자는 이 선택으로 두 가지를 얻었다. 당초 친박근혜 성향으로 분류되던 강재섭 대표의 마음과 당 지지율과 함께 하락했던 자신의 지지율 회복세다. 재보선 직후 37.3%(5월 2일)였던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당 위기를 봉합하면서 40%대에 복귀했다.

④ 마지막 뇌관

11월 들어 이 당선자는 막판 변수에 흔들렸다. 김경준씨 귀국(11월 16일)을 전후해 'BBK 공방'이 불타 올랐고, 이회창 무소속 후보의 출마선언(11월 7일)으로 보수 진영도 분열됐다. 이 때문에 10월 31일 50.8%였던 이 당선자의 지지율은 일주일 만에 41.2%(11월 7일)로 떨어졌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11월 12일 지지 입장을 명확히 해주면서 이 당선자는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월 5일 검찰이 "이 후보와 BBK는 무관하다"고 발표해 주면서 이 당선자는 40%대 중반의 안정적 지지율로 대선 레이스를 마칠 수 있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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