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분수대

강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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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1418년 음력 8월 11일 경복궁 근정전. 전날 즉위한 세종이 처음 반포한 교서(敎書)는 아직 살아 있는 할아버지 태조와 아버지 태종에 대한 찬양으로 시작한다. “태조께서 대업을 이루시고 부왕 전하께서 그를 이어받아… 하늘을 공경하고 백성을 사랑하며…”

장황할 정도로 이어지는 태조와 태종에 대한 20여 년의 치적 예찬은 ‘벼리가 들리면 눈이 열린다(綱擧目張)’는 중국의 성어를 담는다. 이어 모반과 대역(大逆), 아비를 죽인 아들 등 극한의 범죄자를 제외한 모두에 대해 대사면령을 내리면서 끝을 맺는다.

세종의 눈에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로 인식된 ‘그물…’ 얘기는 중국 역대 왕조의 통치자, 또는 정치 사상가들이 즐겨 사용했던 성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벼리라는 뜻의 강(綱)은 그물의 큰 줄기에 해당한다. 크게 엮은 그물의 축선이다. 목(目)이라는 말은 줄기에 달려 있는 수많은 그물코라고 보면 된다.

말인즉슨, 그물의 큰 줄기를 걷어올리면 그에 딸린 작은 그물코가 제대로 펼쳐진다는 뜻이다. 순서대로 일을 하되 큰 것과 작은 것을 먼저 구분해야 한다는 충고를 담고 있다.

중국의 구전 설화에 따르면 진시황을 낳았다는 야사(野史)의 주인공 여불위가 나라를 다스리는 치국의 도로서 먼저 언급을 했다고 나온다. 그러나 정식 기록대로라면 한(漢)대의 반고가 가장 먼저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물의 벼리를 제대로 늘이면 모든 그물코가 제대로 펼쳐진다(若羅網之有紀綱而萬目張也)”는 내용이다.

앞과 뒤,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시급한 것과 하찮은 것을 가리는 일은 나라를 다스리는 자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학(大學)』에서도 이는 누차 강조된다. “사물에는 뿌리와 가지,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니, 그 앞과 뒤를 안다면 도에 가깝다고 하리라(物有本末, 事有終時, 知所先後, 則近道矣)“는 것.

이제 새 대통령이 뽑혔다. 이 즈음에 그물 벼리와 코, 강과 목의 순서를 언급하는 이유는 지난 5년이 꽤 원망스럽기 때문이다. 경세의 근간이랄 수 있는 일의 앞과 뒤, 본(本)과 말(末)을 가리는 일이 계속 흔들리면서 적잖은 혼란을 빚었다. ‘개혁’이라는 취지조차 살리지도 못한 과거 지향적인 정책 흐름은 한국호(號)의 순항을 막았다.

새 지도자는 사안의 경중과 완급을 가려 힘을 쏟아야 할 데 제대로 쏟기 바란다. 지엽말단의 당파적 정쟁과 권력욕에 머문다면 한국은 냉혹한 국제 환경에서 다시 뒤떨어지고 만다.

유광종 국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