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산책>꿈같은 중흥기-바둑인 천명에 세계祺戰도 석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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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바둑인구 1천만명에 2년 연속 세계프로기전 석권.
우리 바둑계가 바야흐로 중흥기에 돌입한 느낌이다.한국바둑의 개척자 조남철(趙南哲)선생이 조국광복에 발맞춰 『이 땅에 찬란한 바둑문화의 꽃을 피워보자』는 뜻을 세우고 바둑으로 나라를 위한다는,이른바 기도보국(棋道報國)의 기치를 내걸 었을 때 바둑인구는 한반도를 통틀어 3천명에 불과했다.
기술적 측면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매우 낮았음은 물론이다.
『팬 없는 프로는 존재 가치가 없다.따라서 저변확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프로기사의 사명임을 명심하라.』필자가청소년시절 조남철선생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말이다.
우리 바둑의 총본산인 재단법인 한국 기원은 바둑강국중 유일하게 국고보조를 한푼도 받지 못하는 단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바둑이 이처럼 눈부신 발전을 이룩한 것은 조남철선생을 정점(頂點)으로 한 프로기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바둑외길에 승부를 걸었으며,여러 언론기관과 독지가(篤志家)들이 꾸준히 후원해준 덕분이다.
조훈현(曺薰鉉).조치훈(趙治勳).서봉수(徐奉洙).유창혁(劉昌赫).이창호(李昌鎬)등 스타들이 세계를 누비고 세인(世人)들이바둑에 대한 인식도 크게 달라졌다.기업들도 부쩍 바둑에 눈을 돌리고 있다.대졸신입사원이나 간부들이 교육프로그 램에 프로기사가 담당하는 「바둑과 인생,그리고 전문가 정신」이라는 제목의 교양강좌를 2~3시간씩 편성하는가 하면 사내기우회(社內棋友會)를 만들어 여가 선용겸 자기성취의 시간을 갖도록 하는 회사가 점점 늘고 있다.
더 적극적인 기업들은 아마추어 또는 프로국내기전이나 국제기전.세계기전을 개최해 이미지 제고(提高)에 활용한다.동양그룹.진로그룹.롯데그룹.동아제약.한국이동통신.BC카드 등이 그 본보기다.한국기원은 폭주하는 기전을 치러내느라 영일(寧 日)이 없다.관계자들의 즐거운 비명을 듣노라면 참으로 꿈만 같다는 생각이든다. 최근 보해양조㈜도 바둑사업에 뛰어들었다.「제1회보해컵 여자프로바둑선수권대회」를 개최한 것.고마운 일이다.이 대회는 이제 갓 걸음마 단계를 벗어난 한국여자프로바둑의 활성화와 수준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이 틀림없다.
『여성 1명을 가르치는 것은 남성 10명을 가르치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보람있는 일』이라는 바둑계의 말도 있듯이 여성바둑을끌어올리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업이다.
중국5단으로 한국에 시집와 한국기원 2단을 받은 황염(黃焰.
89년 중국여류명인)과 EBS배.여류국수의 2관왕 윤영선(尹暎善)초단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한국팀은 4강에 단 1명도 오르지못했다. 그러나 첫 술에 배부를 순 없는 법.황염이 중국의 양후이(楊暉)8단에 크게 우세했던 판을 놓치는등 가능성을 보여준것으로 위안을 삼아야겠다.지난 3년간 프로기사생활을 중단했던 황염의 실전감각이 되살아나려면 다소 시간이 필요하리라.
차오다위안(曹大元)9단의 부인이기도 한 楊8단은 금년 봄 바둑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다 4층에서 뛰어내려 늑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바 있는데 그 사건 후 정신이 맑아지고 바둑도 좋아졌다 하여 화제다.『이번의 역전승은 자신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중국팀 임원의 말이다.
중국팀은 3명이 준결승에 올라 단연 강세다.楊8단을 비롯,루이나이웨이(芮乃偉)9단,펑윈(豊雲)7단이 그들이다.일본팀도 만만치 않은 수준이었으나 중국세에 밀려 가토 도모코(加藤朋子)4단만이 살아 남았다.황염이 옛 실력만 발휘했더라도 중국 2명에한국.일본 각1명의 4강전이 되어 더욱 흥미로웠을 터인데 아쉽다. 〈프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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