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북 타일, 강남 대리석" 불균형 바로잡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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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은 특별구이고, 강북은 보통구인가-'.

▶ 우원식씨는 "갈등이 더 커지기 전에 대안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우원식(47)씨는 지하철 7호선을 타고 한강을 건널 때마다 이런 생각으로 좌절감을 느낀다고 한다. 노원~중곡~뚝섬유원지 역을 지나 강 건너편 청담역에 이르면 타일로 된 역사가 갑자기 대리석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지하철은 단편적인 사례일 뿐이란다. 禹씨는 잘사는 강남과 못사는 강북에서 나타나는 여러 극심한 불균형을 바로 잡겠다며 최근 노원.도봉.강북.성북.중랑.은평.마포.서대문 등 8개구 주민들과 함께 '강남북 균형발전을 위한 주민연대회의'를 결성했다. 강남북간 불균형은 왜 나타나는지, 해결 방안은 있는지 최근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 봤다.

禹씨는 대뜸 '양재천'을 화두로 꺼냈다. 대한민국의 최고 부자들이 산다는 타워팰리스 뒤로 놓인 하천이다. 그는 "강남구는 1백50억원의 예산을 들여 양재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했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의회 의원과 환경관리공단 이사 등으로 일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4년간 중랑천을 생태공원으로 만들기 위해 주민들과 발품을 팔아 왔던 그였다. 그래서 얼마전부터 양재천의 변신을 눈여겨 봤었다. 자치구의 재정력이 큰 몫을 담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 강남북의 불균형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지난 2002년엔 아파트의 재산세 문제를 꺼내 들었다. 당시 재산세는 면적 등에 따른 원가산정 방식으로 부과됐다. 지을 때 들어간 돈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그러나 예컨대 3억원 짜리 아파트라도 면적은 강남이 20평 대라면 강북에선 40평 대였다. 때문에 재산의 가치(아파트 값)는 비슷해도 재산세는 강북 주민들이 더 많이 냈다.

禹씨는 노원구 주민들을 중심으로 2002년 9월에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이후 경실련.참여연대 등과 토론회를 개최하면서 아파트 재산세를 시가기준으로 바꾸자는 서명운동 등을 펼쳤다. 이런 와중에 결국 행정자치부도 부동산 안정 대책 등의 일환으로 지난해 가을에 재산세 과표를 시가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이런 조치들이 나오면서 함께 운동을 해 온 주민들이 자신감을 얻었다"며 "'강남북 문제는 근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쌓였다"고 말했다. 강남북 균형발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자는 제안도 이래서 나왔다. 특별법의 골자 중 하나는 각 구의 자치 재정을 고르게 하자는 것이다.

禹씨는 재정의 '수요충족도'라는 예를 들었다. 필요한 재원에 비해 얼마나 세수가 걷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강남구는 이 비율이 2백11%다. 쉽게 말해 쓸 돈보다 2배 가량의 수입이 들어온다는 얘기다. 그렇지만 노원구는 수요충족도가 38%에 그친다. 강북구도 32% 수준이다. 그는 "종합토지세 때문"이라고 말했다. 구(區)세금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종토세 수입은 강남구가 8백억원이 넘지만 노원구는 91억원, 강남구는 78억원 뿐이라고 한다.

강남구의 초등학교들이 5억원을 들여 전자도서관을 지을 수 있는 이유다. 강북엔 변변한 강당조차 없는 학교도 있는 실정이다. 禹씨는 "지난해 강남구는 구내 학교에 시설비로 78억원을 지원해 줬다"며 "그러나 노원구와 강북구는 각각 2억원과 1억5천만원 뿐이었다"고 말했다.

구별 예산의 편차를 그대로 두면 이러한 불균형은 계속 확대되고 강남북간 갈등을 키울 것이라고 禹씨는 주장했다. 따라서 종토세.재산세 등을 구(區)세금이 아닌 시(市)세금으로 돌려 각 구의 인구.면적 등에 따라 나눠주는게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신 구별로 편차가 적은 담배소비세 등은 구세금으로 돌리는 '세목 교환'을 해야 한다고 禹씨는 말했다.

특별법엔 또 강남북간 불균형을 일으키는 정책 등을 없애기 위해 편의.공공시설에 예산을 배정할 때 각 구의 인구.면적 등에 비례토록 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게 할 계획이다. 정책결정에 큰 영향을 주는 이른바 '파워 엘리트'들이 강남에 많이 살고 있어 기반시설에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禹씨는 "강남의 초기 개발비용을 누가 댔는가. 서울 시민 전체가 낸 세금으로 개발한 것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개발 이득으로 강남의 땅 값이 올랐는데 그 이익을 강남에서만 쓰겠다는건 말이 안된다고도 주장했다.

특별법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계속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현재 홈페이지(www.nowonforum.net)에서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그는 "뉴타운을 만들어 강남북 불균형을 시정한다고 하지만 정작 필요한건 자치구의 재정 불균형을 없애는 것"이라며 "모두 지방자치제를 도입하면서 전략적 구상없이 급조해서 실시하는 바람에 나타난 부작용들이고, 갈등이 더 커지기 전에 대안을 마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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