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서 큰절 … 깜짝 놀랐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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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17대 대통령 선거일을 이틀 앞둔 17일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서울 신촌 거리에 붙어 있는 후보 포스터를 보며 의견을 나누고 있다. 오른쪽부터 폴 통크스(영국), 존 프랭클(미국), 게이브 허드슨(미국), 마이클 키즈홈(캐나다). [사진=김태성 기자]

2007 대통령 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넘치는 '대선 이슈'로 온 나라가 들썩인다. 선거에 참여할 수 없는 외국인도 싫든 좋든 대선과 관련된 여러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다른 문화, 다른 정치 체제 속에서 성장한 그들에게 한국의 대선은 어떻게 느껴질까. 그들의 눈에 비친 대선을 살펴봤다.

◆'다이내믹 코리아' 실감=영어강사를 하고 있는 앤절리나 키드(28)는 늘 지하철을 이용한다. 요즘 키드는 집 앞에서, 지하철역에서 유세 차량을 만나고, 지하철 안에서도 어깨띠를 두르고 홍보하는 사람들과 마주친다. 키드는 "사회가 활기차 보여 좋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대통령을 뽑는 데 시민의 참여를 유도하기엔 좋은 아이디어"라며 "조용한 캐나다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라고 말했다.

연세대 언더우드 국제대학에서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미국인 존 프랭클(40) 교수는 "한국의 떠들썩한 대선은 사회의 역동성을 잘 반영한다"며 "공화당.민주당 양당 체제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미국보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베트남 호찌민대 한국어학과 2학년을 마치고 부산외대로 편입한 짐쿼바오(24)는 최근 인터넷 서핑에 재미를 붙였다. 대선 관련 콘텐트가 재미 있어서다. 지역대표가 공산당 대회에서 주석과 총리를 선출하는 베트남에서는 상상도 못할 풍경이었다. 그는 "위엄을 무너뜨리고 한없이 후보를 망가뜨리는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를 보면서, 나도 쾌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친구들과 '특이한 후보' '후보 관련 소문'을 얘기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는 "이런 선거 방식이 정말 뛰어난 리더를 뽑는 것인지는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사업차 한국에 머물고 있는 스웨덴인 토마스(40).마리아 존슨(43.여) 부부는 17일 오전 명동 거리를 거닐다 깜짝 놀랐다. 유니폼을 맞춰 입은 사람들이 갑자기 큰절을 하더니, 손가락을 펼쳐 들며 큰소리로 소리쳤다. 토마스는 "스웨덴은 4년마다 총리를 뽑는데, 보통 연설하고 토론하는 게 전부"라며 "한국에선 길거리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선거운동을 볼 수 있어 생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사건 많아 관심=파키스탄에서 온 근로자 쇼하입핫산(38)은 "안정된 선거 제도가 부럽다"고 말했다. 1947년 독립과 함께 대통령제(5년제)가 시작됐다는 파키스탄의 정정은 불안했다. 독립 후 세 번이나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국민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극에 달했다. 그는 "내가 뽑은 대통령이 5년 동안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에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데, 그들을 위한 정책을 가진 대통령이 뽑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중국인 유학생 류징주(22)는 "최근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와 아버지가 지지하는 후보가 서로 달라 설전을 벌이더라"며 "그런데도, 서로 아무렇지 않게 즐겁게 지내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후보가 달라도, 서로 친하게 지낼 수 있는 게 정치적으로 성숙한 모습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연세대 국제대학원의 영국인 폴 통크스(42) 교수는 "이번 대선을 보면 정책에 대한 고민 없이 지나치게 이벤트 위주로 흐르는 것 같다"며 "흥미로운 사건이 많아 제3자로서는 흥미롭게 대선을 지켜보고 있지만, 리더를 뽑아야 하는 당사자(국민)에게는 바람직한 일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네거티브 유세에 대한 평가도 있었다. 호주인 잭 마스(32)는 "네거티브도 전략의 일환"이라며 "그러나 최근 미디어를 통해 '주먹다짐하는 국회'를 보면 알 수 있듯 문제는 유권자의 냉소가 커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호주인으로서 바란다면, 새 대통령이 자유무역에 적극적이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글=송지혜.강기헌 기자 ,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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