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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남 교수 수묵화 50년 회고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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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남천(南天) 송수남(66.홍익대 동양화과 교수) 하면 떠오르는 그림은 까만 산수다. 검은 먹빛만으로 한국의 풍경을 그린 그를 사람들은 '수묵화 운동의 기수'라고 불렀다. 1980년대 초 제자들과 함께 한국화단에 수묵화 운동 바람을 일으킨 뒤 20여년을 변함없이 수묵에 매달려 왔다. "먹은 어둠이 남아 있고 또한 걷히기도 하는 새벽과도 같다"고 푸는 남천은 "그것을 뿌리로 채색도 화려하게 꽃필 수 있는 것"이라고 먹에 대한 믿음을 말한다.

20일부터 3월 14일까지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우리시대의 수묵인 남천 송수남'은 평생을 먹 사랑과 연구로 보낸 한 화가의 먹내음 가득한 회고전이다.

30년 동안 봉직한 홍익대 정년 퇴임을 앞두고 마음먹고 마련한 개인전에 남천은 1954년부터 2004년까지 50년에 걸친 그림 자취를 펼쳐놓았다. 진하게 또는 연하게 농담을 달리하며 먹 덩어리로 피어오르는 겹겹 산등성이는 간결하면서도 풍성하게 한국 산하를 되살려낸다.

남천은 상표가 돼버린 동그란 테 안경을 밀어올리며 쑥스러운 듯 덧붙였다. "사람은 시적 감정을 항상 지녀야 하지요."

그 말처럼 남천은 화가이면서 또한 시인이다. 계간 문학지 '미네르바' 봄호에 시인으로 추천완료를 받았다. 그림으로 시를 써왔으면서도 직성이 풀리지 않아 시인이 되었다. "가을 산을 오르다가/새소리를 듣는다//하늘을 올려다보니/구름 한 조각 떠간다…돌아와/화선지, 그 빈 하늘에/새 한 마리 그린다//울음은 보이지 않는다."('새 울음'에서)

"글과 그림이 둘이 아니고 하나임을 뒤늦게 깨달았다"는 화가의 고백은 화폭에 보이지 않는 새 울음을 적어넣고 있던 시인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눈 내리는 날/매화 한 가지 긋는다//봉오리 두어 개/벙근 꽃 여나믄//더 그릴 것도 없고/더 쓸 것도 없다."('매화 한 가지'에서) 남천의 먹빛깔 산수는 더 그릴 것도, 쓸 것도 없는 천상 예인이 마지막으로 기댄 본질과도 같은 것이다.

송수남씨는 90년대 들어 형상이 사라지면서 검은 붓질만으로 구성한 '붓의 놀림'연작을 선보였다. 고른 두께로 죽죽 그어 빗살문이나 창호문을 연상시키는 근작에 대해 미술평론가 오광수씨는 "화면은 빼곡한 선획으로 차 있고 동시에 반복의 무념으로 비어 있다"며 "운필의 작동은 이제 단순한 표현의 장이 아닌 자신을 가다듬는 고른 호흡의 명상에 깊이 대응된다"고 썼다.

고향 전주의 하늘을 그리워하는 화가는 그 남도의 따뜻하고 정한 어린 산과 들을 먹산수로 너울너울 노래했다. 만경.김제 들판에 피어나던 풍경이 남천의 수묵화에 들어앉았다. 02-720-1020.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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