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도 늘리기 '정권 말 선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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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후 6시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12층 회의실.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이 박성철 공무원 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과 공무원 노사 합의문을 주고받으며 악수를 나눴다. 박 장관은 이날 박 위원장과 3시간 넘게 협상을 벌인 뒤 "6급 이하 공무원들의 정년 연장 문제에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이 과정에서 조합의 의견을 적극 수렴한다"는 합의했다. 노무현 정부 들어 공무원을 2만8450명(2007년 1만3412명) 늘린 데 이어 정년까지 늘릴 궁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그동안 적잖은 추가 재정지출과 민간 분야에 미칠 파급효과를 감안해 공무원 정년 연장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노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결국 한발 물러서고 말았다. 최영출 충북대 교수는 "임기 말을 틈타 공무원 수를 대폭 늘린 데 이어 정년마저 연장하려는 시도는 공무원 사회의 전형적인 조직 이기주의"라고 비판했다.

정부 대표인 박 장관과 공무원노조 대표인 박 위원장은 이날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에서 정부 공동교섭 조인식을 열고 5개 항의 합의문에 서명했다. 5개 항은 ▶직급별 정년 평등화 ▶공무원 연금제도 개선 ▶성과 상여금제 개선 ▶노사 교섭 후 공무원 보수 인상 폭 결정 ▶교원과 학교 근무 행정직의 근무시간 동일화 등이다.

공무원노조는 직급별 정년 평등화를 제1 요구조건으로 내걸고 협상에 임했다. 현행 공무원 정년은 1998년 외환위기를 맞아 공직사회가 대대적으로 구조조정되는 과정에서 5급 이상은 60세, 6급 이하는 57세로 1년씩 단축됐다. '6급 이하 공무원은 기관장의 판단에 따라 최고 3년까지 정년을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도 공무원법에서 빠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의에서는 인위적으로 공무원 정년을 끌어올려 법제화하면 젊은 인력 대신 고임금 고령 근로자의 고용이 늘면서 경제 전반의 활력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며 우려를 표시해 왔다. '철밥통' 공무원 사회의 정년 연장에 대한 국민적 여론 또한 부정적이었다.

공무원 노사 합의는 민간기업의 노사 교섭과 달리 강제성이 거의 없다. 양측이 합의하더라도 관련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가 실질적인 결정권을 쥐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국회가 국민의 부정적 여론을 들어 반대할 경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번 합의가 차기 정부에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차기 정부가 국민 여론을 들어 정년 연장에 반대하고 나설 경우 노조 측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갈등이 증폭될 것이란 전망이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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