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설사 새로 쓴 40년 집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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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버려졌거나 불 타버렸을지도 모를 주옥 같은 옛 소설들을 후손에게 물려주게 됐으니 40여년 노력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뿌듯합니다.”

김광순(68·사진)경북대 명예교수(국문과)가 최근 필사본 한국 고소설 6차본 12권을 출판하면서 ‘김광순 소장 필사본 한국고소설 전집’ 82권을 완간했다. 이 전집은 그동안 필사본으로 전승되어온 우리 고소설 400여 편을 10여 년에 걸쳐 교정하고 작품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붙인 것이다.

초창기 국문학자들은 한국 고소설이 150편 미만이라고 알고 있었다. 때문에 김 교수가 발간한 400여 편의 고소설에는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한중일소화(閒中一笑話)’, ‘승호상송기(僧虎相訟記)’, ‘요화전(瑤華傳)’, ‘강긔닌젼’, ‘기축록(己丑錄)’ 등이 처음 소개되는 작품들이다.

김진세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평에서 “한국 고소설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김 교수가 고소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경북대 대학원 석사학위를 받은 1965년. 우리나라 고소설 숫자가 지극히 빈약하다는 사실에 의문을 갖고 수집을 해보기로 작정했다.

전국의 옛 마을과 종택을 찾아 다니며 수소문해 한두 권씩 사들였다. 80년에는 강원도 정선의 누군가가 고소설을 갖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갔으나 책을 넣어둔 가마니에서 빈대,벼룩이 나온다며 불태운 뒤였다. 그는 “당시 그 집 대문을 나설 때의 안타까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어떤 책은 주인이 팔지 않으려고 해 한달치 월급을 몽땅 턴 비싼 값에 구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모은 것이 400여편에 이르자 현대인이 읽고 이해할 수 있게 해야겠다며 10여년 전부터 전집 발간 작업을 한 것이다.

김 교수는 60여 권의 저서에 13권의 번역서, 70여 권의 편저를 냈으며, 한국 고소설학회장, 한국어문학회장, 국제 퇴계학회 대구·경북지부장 등을 지냈다. 지난해 고소설 연구로 3·1 문화상을 수상했다.

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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