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조는 내 영혼의 헛헛함 채워준 양식”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올해로 시조 나이 스물여덟 해입니다. 이젠 웬만큼은 행간을 짚어내고 함께한 시간만큼 여유가 있을 법도 한데, 수상 소식에 정수리부터 싸하게 밀물이 들어왔습니다.”

올해 중앙 시조 대상 수상자로 결정된 이승은(48) 씨. 수상 소식을 전하자 그의 눈자위는 이내 붉어졌다. 시인은 “시조는 나에게 살아온 날의 따스한 발자국이자 영혼의 헛헛함을 체워준 양식이었다”며 “지금 시조가 문학 장르의 ‘도린곁’(사람이 별로 가지 않는 외진 곳)인데도 더불어 손잡아 준 중앙일보에 고마움을 전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 진명여고 재학 시절 문예반이었던 그는 당시 담당교사였던 이우종 시인(99년 작고)을 통해 시조를 접하게 됐다. 백일장을 휩쓸고 다니던 ‘문학소녀’는 시조시인으로 평생을 산다.

 그는 올 1학기까지 8년간 대구 영진전문대에서 아동문학 강의를 해왔다. 서울에 사는 그가 대구를 오가는 길 열차 안에서 생각하고 다듬었던 시조들이 올 가을 출간된『환한 적막』(동학사)이란 시집으로 엮어졌다.

“KTX 역방향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사물들이 한 점처럼 작게 보일 때까지 오래도록 따라옵니다. 그것을 보며 새삼 깨달은 게 있습니다. 제 발자국과 허물을 추스르는 시간의 소중함입니다.”

대상 수상작 ‘복사꽃 그늘’은 대구 ‘웃골’에서 떠올린 작품이다. “봄에 복숭아 나무가 그득한 길을 걷는데 그 아름다운 복사꽃도 그늘을 만들더라고요. 영원한 사랑의 맹세가 드리우는 그림자, 그 양면성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는 이번 학기부터 대학 강의를 그만뒀다. 작품 활동과 후진 양성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에서다.

 “갓 지어낸, 차지고 따뜻하고 윤기 흐르는 한 그릇 밥 같은 시인이었으면 합니다. 선고하느라 가려 뽑으시느라 수고하신 선생님들께, 늘 허둥지둥 살아가는 저를 지켜주는 가족에게 빚지지 않는 시인으로 남겠습니다.”

 
 ◆ 약력=▶ 1958년 서울 출생 ▶ 79년 전국 민족시대회 장원으로 등단 ▶ 한국 시조작품상, 대구 시조문학상, 이영도 문학상 수상 ▶ 시집『시간의 안부를 묻다』『시간의 물그늘』『환한 적막』 등

이에스더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