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해는뜨고 해는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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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제1부 불타는 바다 그리고,산 자도 말이 없었다(10) 『네,이년아.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게 주제에 기집이라고 색을 써.
하이고,이거야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어디다 대고 이년이 가랭이를벌려.』 잘못했어요.잘못했어요.그냥 주인어른이 하라는 대로,전아무 것도 몰라요.겨우 그런 말을 마당에 처박힌 채 입안에 지걱거리는 흙을 뱉어내며 말했을 때,화순이도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시나요.그 말 하나가 그녀가 뱉어낸말의 전부였다.
『오호,이년 봐라.남의 서방 새치기해 처먹으면서 내가 뭘 잘못했냐니.』 길길이 날뛰면서 주인여자는 한움큼씩 뽑히는 화순의머리카락을 들어 그녀의 뺨을 때렸었다.
『그저 대가리 검은 건 믿지 말라더니,사람하고 까마귀는 믿을게 못 된다더니,내가 이꼴을 당하네.』 그날 밤,골방에 빨래처럼 널브러져서 열에 들뜬 몸으로 화순은 오랜만에 집을 떠올렸었다.엄마를,아버지를 그리고 저녁 안개 속으로 굴뚝마다 연기가 피어오르던 고향 마을을.
어린 마음에 집을 나가기로 했던 일들과,기차를 타고 경성에 와 내리던 그 길고 길었던 밤기차도.
방파제 위에 쭈그리고 앉아,지금쯤 가게에서는 자신을 찾느라 야단이 났겠다는 생각도 했다.그게 다 뭐람.지금 내가 저 물에빠져죽는다 해도,누구 하나 내 불어터진 몸뚱아리 안고 울어줄 사람도 없는데.
몸을 일으켜 화순은 캄캄하게 어둠 뿐인 바다를 내다본다.
거길 가 봤었지.그래도 그 칠성이 아주머니나 그 아저씨 밑에서 있을 때는 마음 고생은 없지 않았던가.불탄 자리는 포목점도들어서고 철물점도 들어서고 아주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방파제로 올라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바람이 불어와 화순의 옷깃을 날리며 지나갔다.멀리 휘돌아간 방파제 저 끝에 외등이 켜 있고,경비원이 오락가락 하는 모습이 바라보였다.
네 놈도 춥겠다.화순은 무심하게 그런 말을 입속으로 뇌까렸다. 그래야겠지.길남이 어느 쪽에서 바다에 뛰어들지 모르지만,나도 그날은 유곽의 갈보는 아니리라.술냄새 풍겨가면서 저 경비원놈을 나라도 잡고 있을 거니까.제놈도 사낸데 사타구니 잡고 늘어지는 년을 마다할 리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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