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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이야기>27.셰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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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4면

『셰인』(Shane)은 떠나가는 사나이의 영화다.어느 마을이나 집단에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을 때 홀연히 누군가 나타나 악당을 물리치고 다시 홀연히 사라진다는 해방자의 공식에 입각한 그런 영화 말이다.우리들은 『황야의 7인』『수색자』등에서 그런 공식을 많이 보아왔다.
인디언에게 포위돼 공격받는 백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제7기병대가 나팔을 불며 달려오고,독일군에 시달리는 연합군을 구하러 오는 지원대가 고적을 울리며 나타난다.
이런 해방자는 얼마든지 있다.론레인저.조로.로빈 후드.배트맨.슈퍼맨,그리고 암행어사 박문수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셰인은 전형적인 해방자다.옛날 방물장수처럼 타향에서 온 낯선뜨내기라는 낭만적인 신비감,총잡이였다는 「과거」가 있는 사나이,그리고 악당을 물리친 다음엔 은은한 연정을 뒤에 남기고 구질구질하지 않게 떠나는 자의 아름다움….
아무 것도 없는 들판뿐이어서 오히려 아름답고 맑은 와이오밍의풍경 속에서 키스 신이 단 한번도 없는 이 영화를 우리들은 대단한 사랑 이야기로도 기억해야 한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도 앨런 래드와 진 아서는 얼마나 은근한 속앓이 사랑을 했던가.
땅끝 마을의 순진한 농부,착한 아내,귀여운 아들의 행복을 고스란히 살려두기 위해 「권총은 떠난다」면서 사라지는 총잡이 떠돌이. 감정의 변화가 차근차근,천천히 얘기하고 천천히 들어도 좋은 여유있는 시대(1953년)의 고전영화였다.
차근차근 여유있기는 사랑만이 아니라 살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서 죄의식이나 고뇌의 감정 없이 무차별 대량학살을일삼기 시작한 것은 홍콩의 쿵푸와 이탈리아의 마카로니 웨스턴이등장할 무렵부터였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판초를 걸치고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 사이 사이에서 마구 사람을 쏘아죽이는 영화들을 보고 존 웨인이 편지를 보냈다.그건 진짜 서부영화가 아니라고.
목장주와 농부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울타리 전쟁」을 다룬 영화이기는 해도 『셰인』에선 사람이 별로 죽지 않는다.
악당 윌슨(잭 팰런스)이 순진한 토리(엘리샤 쿡)를 죽이고 마지막에 그래프턴의 가게에서 벌어지는 총격전,그것이 전부다.
요즈음 추풍낙엽처럼 사람들이 죽는 영화를 보면 문명과 문화는분명히 발달하는 중인데 사람들은 왜 저렇게 점점 더 야만적이 되는가 의아해지기도 한다.
날이 갈수록 살벌해지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니 박한상 같은 아들도 태어나지 않나 모를 일이다.
빅터 영의 주제곡이 아름다웠던 이 영화에서 아들 조이로 출연해 인기를 모았던 소년 브랜던 디 와일드는 『블루 데님』『밤길』『허드』등에 출연한 다음 20대 초반을 못넘기고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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