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하키대표 무리한 출전 제기량 못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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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한국남자하키팀이 지쳐있다.불과 40여일전 히로시마 아시아드에서 날렵하게 뛰던 모습이 이번 월드컵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백중세가 예상됐던 인도와의 예선 첫 경기에서 후반 체력저하로무너졌고 25일 남아공과의 경기에서도 시종일관 힘에 부치는 모습을 보이며 0-0무승부를 기록하고 말았다.
인도전이 끝난후 김상렬(金相烈)감독은『내가 팀을 맡고 난 이후 오늘같이 경기가 안된 날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선수들이 훈련을 게을리한 것도 아니고 아시안게임이후 투지가 실종된 것도 아니다.문제는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열린 전국체전이었다.기자회견장에서 외국기자들이 金감독에게『한국팀이 아시안게임 우승때 보여준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있는데그 이유가 뭔가』라고 물었다.
이에대해 金감독은『국내대회에 연이어 참가하느라 이번 월드컵만을 준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또 선수들의 누적된 피로도 제기량을 보이지 못하는 원인』이라고 대답했다.
외국기자들은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올림픽과 함께 양대 메이저대회인 월드컵출전을 코앞에 둔 팀이 국내대회 출전때문에 피로가 안풀렸다니….
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그리고 이것이 바로 한치 앞을내다보지 못하는 한국 체육행정의 현주소다.
대표선수 소속팀에서는 당연히 전국체전에 훌륭한 선수를 출전시켜 좋은 성적을 내길 원한다.선수들은 소속팀에서 월급등 혜택을받고 있어 팀의 뜻(?)을 거역할 수 없게 돼 있다.
따라서 체육회나 여타 책임있는 기관의 조정작업이 당연히 있어야 한다.선수들이 태극마크를 달고 세계무대에서 뛰는 일은 국익을 선양하는 길이고 모든 한국인들의 자랑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체육정책은 현실과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으니 답답 할 뿐이다.
지난 9월 남자배구대표팀이 그리스에서 있었던 세계선수권에 출전하고 곧바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느라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참패를 당한 수모가 아직도 생생하다.
불과 40여일만에 똑같은 상황이 재현됐다.한국이 사상 처음 출전하는 월드컵의 엄청난 비중을 한번만이라도 숙고했다면 선수들이 지쳐 성적을 내지 못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협회와 체육회의 국제적 감각이 요망된다.
[시드니 =朴炅德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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