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 왕국' 일본 행정고시 없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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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다 야스오 총리 정권은 정년 보장은 물론 퇴직 뒤 낙하산 인사로 공기업 취업까지 보장해 왔던 일본 공무원 제도에 대한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중앙포토]

한번 관료가 되면 정년 뒤까지 '평생'을 보장받는 일본의 국가공무원 제도가 근본적인 수술을 받게 됐다. 기존 공무원 채용시험 제도(고시)가 폐지되는 대신 새로운 선발 제도가 신설되고, 연공 서열에 의한 승진 제도는 실적에 따른 성과주의로 전환된다. 퇴직 이후 산하 공기업으로 옮겨가는 '낙하산 인사' 관행에도 제동이 걸린다.

내각 직속 공무원제도개혁간담회는 지금까지 논의됐던 개혁 방안을 이달 중 '국가공무원제도개혁기본'으로 최종적으로 정리해 내년 1월 확정한 뒤 정기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추진해 온 구조 개혁의 '마지막 성역'을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가 이어받은 것이다.

개혁안은 한국의 행정고시와 유사한 현행 1종 시험과 2종 시험을 폐지하고, 종합직과 일반직을 신설한다. 종합직은 기획 업무를 담당하고, 일반직은 집행 업무를 담당하는 것으로 근본 목적은 기존 제도와 관행에 따른 특권을 없애려는 것이다. 일본 공직사회에서는 1종 시험에 합격하면 이른바 신분이 '캐리어 공무원'으로 고착되면서 60세 정년까지 자동으로 고위직까지 올라간다. 그러다 보니 1종 시험 출신이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의 88%를 차지해 조직 경직 등 폐해가 만만치 않았다.

채용 제도는 일반 기업의 승진 제도와 사실상 같은 구조로 전환된다. 관청에 들어간 뒤 10~15년에 걸쳐 실적에 근거해 초급 간부까지 올라가되 이 기간 중 전문적인 연수와 업무 능력을 검증받아 고위 간부로 육성되는 것이다. 공무원의 전문성을 감안해 신분은 보장해 주되 '고시'에 한번 붙었다고 저절로 승진하는 관행은 깨겠다는 취지다. 공무원제도개혁간담회는 "고위 간부 육성 기간이 너무 길면 자칫 현행 제도와 다를 게 없다"는 우려를 받아들여 보완책을 함께 검토키로 했다.

재직 중 또는 퇴직한 국가 공무원의 낙하산 인사 관리 시스템도 정비한다. 지금까지 퇴직 공무원은 각 부처에서 산하 공기업으로 직접 '낙하산'을 태워 내려보냈지만 내년부터는 '관민인재교류센터'가 일괄 관리한다. 공무원의 전문성을 재활용하는 길은 열어주되 투명하게 관리할 수 있는 '인재 뱅크' 형태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이해 관계가 있는 산하 기관이나 민간 기업에 슬그머니 옮겨가는 것을 막고, 총리 산하 내각부에 관리 기구를 설치해 일괄적으로 투명하게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운영 자체는 민간에 위탁하기로 했다. 50세 이상 또는 과장급 이상이 되면 이 센터에 등록해 전직을 알선받게 된다.

와타나베 요시미(渡逸喜美) 행정개혁담당상은 "낙하산 인사로 공기업을 두세 번 옮겨 다니는 행위금지도 법안에 명기한다"도 밝혔다. 첫 '낙하산 근무처'의 임기가 끝나면 다른 낙하산 근무처로 옮기는 '메뚜기 취업' 금지도 명문화해 뒷구멍 취업을 근본적으로 차단하기로 한 것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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