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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설비투자는 활발한데 한국은 6년 만에 뒷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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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2005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반짝’했던 설비투자가 다시 주춤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 경제의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설비투자는 국가 경제의 중장기 성장 여부를 판단하는 가늠자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1991년부터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릴 정도의 장기 불황을 겪었지만, 2003년 이후 설비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심각해지는 투자 부진=1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3분기 기계류 설비투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0.9% 줄었다. 분기별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보인 것은 2001년 4분기(-3.7%) 이후 약 6년 만이다. 전체 설비투자의 85%를 차지하는 기계류 설비투자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는 것은 기존 설비의 노후화를 보충할 정도의 투자마저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돈이 없어 투자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가진 현금(사내 유보금)은 갈수록 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선물거래소에 따르면 9월 말 현재 534개 제조업체의 유보금은 347조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8.7% 늘었다. 자본금의 8배 가까운 현금을 쌓아 두고 있지만 투자 활동엔 인색하다는 얘기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돈을 벌 수 있다면 누가 투자하지 않겠느냐”며 “경기 상황이 불안한 데다 투자를 가로막는 기업 규제도 여전해 기업들이 투자활동에 소극적인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같은 영향으로 내년의 설비투자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 한은은 내년 설비투자 증가율을 올해(7.6%)보다 낮은 6.4%로 전망했다. 이로 인해 한은은 내년 경제성장률도 올해보다 낮춰 잡은 것이다. 2003년 이후 매년 5%를 밑돌고 있는 경제성장률이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멀리 앞서가는 일본=한은 분석에 따르면 한국은 2005년부터, 일본은 2003년부터 설비투자가 회복세로 전환됐다. 또 최근까지 회복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보면 양국 간 차이점이 드러난다. 경제 규모가 한국보다 훨씬 큰 탓에 일본의 경제성장률은 우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설비투자 증가율이나 GDP에서 설비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과 거의 비슷하다.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설비투자를 많이 한다는 의미다. 한은 동향분석팀 최규권 차장은 “몇 년 새 우리의 설비투자가 많이 늘긴 했지만 아직 경제 규모에 비해 적정 수준 이하”라며 “반면 일본은 경제 규모 이상의 투자가 진행되고 있는 게 한국과 다른 점”이라고 설명했다.

제조업과 비제조업의 불균형 투자도 문제다.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65%에 달하지만 제조업에 대한 설비투자 증가세는 둔화되고 있는 반면 비제조업 투자는 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제조업·비제조업에서 똑같이 투자 증가세가 유지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 규모에 못 미치는 설비투자, 제조업에 대한 투자증가율 감소세는 결국 한국 경제의 중장기 성장 동력을 위협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들의 투자 여력은 많이 향상됐다”며 “이제 본격적인 투자 확대가 가능하도록 규제 완화 같은 투자 환경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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