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총련>6.끝 민단과의 화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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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6일 오후3시 교토(京都)시 나카쿄(中京)구 호리카와오이케(堀川御池).이 지역 민단과 조총련소속 시민.학생 1천3백명이 함께 어울려 교토시청까지 약 1.2㎞의 합동퍼레이드를 벌이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한복차림에 서로 손을 맞잡은 이들은 장구.꽹과리의흥겨운 소리에 발맞춰 한민족(韓民族)의 단결을 연도의 32만 시민에게 뽐냈다.퍼레이드가 끝나고 참가자들이 일제히 환호를 지르자 민단-조총련간의 벽은 일순 허물어지는 듯 했다.
교토 건도(建都)1천2백년기념 교토축제중 하나로 열린 「원 코리아 퍼레이드」.민단과 조총련간에는 최근 이같은 화합.교류 움직임이 한창이다.
일본내의「남과 북」으로 결성이후 줄곧 가파른 대치관계를 가져왔던 두 단체가 국경선을 허물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주의권 몰락에 이은 北-美핵협상 타결,北-日수교 무드에 따른 조총련쪽의 화해 손짓은 더 잦아지고 있다.새로운 국제정세가 조총련의 위기와 함께 민단과의 해빙(解氷)도 몰고오고있는 셈이다.
지난 8월7일 오사카(大阪)에서 열린 「원 코리아 바둑대회」도 화해 발걸음의 상징적 예.이 대회는 지난해 3월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이후 남북관계가 계속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국면속에서 성사돼 더욱 의미가 크다.
이 대회가 열리게 된 계기는 오사카지역 상공인들의 지난 연말송년회 모임.민단계 코리아오사카바둑협회 김한익(金漢翊)회장과 조총련계 오사카조선바둑협회 윤군상(尹君相)회장이 송년회에 함께참석,바둑이 화제에 올랐다.
金-尹회장은 며칠후 곧바로 공동바둑대회 집행위원회를 구성,1월부터 한달에 한번씩 모임을 갖고 4월에 대회날짜를 7월17일로 잡았다.당시 남북관계는 박영수(朴英洙.남북실무접촉 대표)북측 대표의 「서울 불바다」 발언등으로 극도로 냉각 ,양측은 물밑 접촉을 벌여야 했다.
金회장은 『한때 대회개최를 그만두자는 얘기도 나왔지만 남북관계가 어려운 때일수록 서로간 교류가 중요하다는 결론을 냈다』며『이에따라 슬로건을 「대결보다 친목을」로 정했다』고 했다.
7월초 김일성(金日成)의 사망에 따른 조총련 오사카본부 추도식이 17일로 결정되면서 대회는 다시 무산될 위기를 맞았지만 조총련중앙의 허가로 8월에 빛을 보게됐다.
오사카 야스타생명빌딩에서 열린 대회에는 민단.조총련 바둑팬 2백50명이 참가,「38선없는」 반상(盤上)에서 원 코리아의 열전을 벌였다.
당시 金사망후 집안 단속에 한창이었던 조총련이 대회를 허가한것이나 조총련 기관지인『조선신보』가 상세히 보도한 것도 일대「사건」이라는 평이다.
스포츠 교류의 경우 올 7월에 열린 가와사키(川崎)시 민단-조총련 상공인 주최 골프대회와 8월의 오사카 청.장년 유도대회가 대표적인 예.
문화활동은 올 4월의 가야금합동연주(교토)에 이어 제2회 「통일의 춤」 공연이 오는 12월에 도쿄 히비야(日比谷)공회당에서 개최될 예정이다.이밖에 사이타마(埼玉).후쿠오카(福岡)에서는 재일교포의 권익옹호운동이 공동으로 전개중이다.
민단중앙본부 정몽주(鄭夢周)조직국장은 『91년 지바(千葉)세계탁구선수권대회 공동응원에서 첫 물꼬를 튼 조총련과의 공식 화합.교류행사는 지금까지 40여건에 이른다』며 『각 지부단위의 비공식 교류는 일일이 헤아릴수 없을 정도』라고 말 했다.
양 단체의 화해 움직임은 조총련의 세(勢)불리기에 따른 것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기로에 선 조총련내 기층인사들의 의식변화의산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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