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각위기 伊총리-司正검찰과 정면대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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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3월 총선을 통해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의 화려한 변신에성공한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성역없는 수사를 외치는 사정검찰과의 정면대결로 최악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취임초부터 치안판사들의 횡포를 비난해온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지난 7월 자신이 소유한 피닌베스트 그룹으로 수사망이 좁혀지자치안판사들의 예비구금권을 제한,부패척결을 내세우는 사정검찰의 「마니 풀리테」(깨끗한 손)운동을 사실상 중단시 키려는 법령을밀어붙이다 여론이 악화되자 슬그머니 후퇴했다.또 지난달에는 알프레도 비온디 법무장관을 통해 치안판사들이 범하고 있는 「엄청난 직업적 오류」를 수사할 방침이라고 밝히는등 사정검찰에 대한공세를 멈추지 않아왔다.
이에 맞서 치안판사들은 지난 22일 총리가 나폴리에서 열린 유엔 조직범죄 대책회의에 참석,돈세탁과 조직범죄 척결의지를 밝히던 바로 그날 총리 자신에 대한 공식수사 방침을 밝힘으로써 그에게 국제적 망신을 주며 역공을 취했다.기업경영 스타일을 국가운영에 적용하려던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치안판사들에게 오히려 발목이 잡혀 실각위기까지 몰리게 된 것이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이번에 소환된 이유는 피닌베스트 그룹의 출판 자회사 몬다도리와 생명보험 자회사 메디올라눔이 각각 91년과 92년 세무감사를 무마하기 위해 세무관리들에게 1억3천만리라와 1억리라의 뇌물을 준 혐의 때문이다.당시 베를루스코니 회장의 자문역으로 있던 동생 파올로가 직접 금고에서 현금을 꺼내 주며 뇌물제공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직접 개입 여부가 기소여부를 결정짓는 관건이 되고 있다.
수사결과 혐의가 확인돼 공식기소된다면 그의 사임은 불가피하다.또한 그 전에라도 중도우파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북부동맹등이연정에서 이탈,그에 대한 의회의 불신임에 가담함으로써 강제로 실각당하는 사태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로서 연내 실각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정파를 초월한 현안으로 제기돼 있는 내년도 긴축예산안을 기한인 연말까지 통과시켜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적어도 그때까지는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그 악역을 맡아야 한 다는데 연정참여 정당들의 이해가 일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현재의 위태로운 5당 연정 체제는 비록 불안하긴 하지만 적어도 연말까지는 유지되고,그후 자연스럽게 연정이 깨지면서베를루스코니 총리 스스로 사퇴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파리=高大勳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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