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시대>12.제2부 2.의회와 단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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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우리나라의 지방의회는 91년말 구성돼 3년여동안 정치선진화 등에 상당한 기여를 해왔다.
그러나 지방의회는 동시에 지방자치단체 집행부와 끊임없이 크고작은 마찰과 갈등을 빚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갈등의 핵심적 요인은 권한배분.정책대립.예우문제등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주된 마찰은 의회쪽의 권한확대와 위상정립을 위한 도전적인 문제제기에서 비롯되었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경우도 지방자치제가 시작된 60,70년대에는 지방의회와 집행부가 끊임없이 마찰을 겪었다.
특히 자치단체장이 지방의회의 다수당과 소속을 달리할 경우 마찰과 갈등은 더 심했다고 일본 전문가들은 말한다.
우리나라도 지자제가 본격화하는 내년 6월의 단체장직선 이후부터 과거 일본의 경우와 같이 갖가지 마찰이 예상되고 있다.
그동안 지방의회와 집행부간에 일어난 가장 큰 규모의 갈등은 유급보좌관제 도입을 둘러싼 갈등과 행정사무감사 의무화를 두고 벌인 공방이었다.
92년4월22일 서울시의회는 시의원 1인에 1명씩의 유급보좌관을 둘 수 있도록 하는 조례개정안을 여야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시의원은 명예직」이라는 이유로 시행을거부하고 재의(再議)를 요구했다.
결국 시의회에서 재의결을 위한 안건이 계류돼 있는동안 지방자치법이 개정돼 유급보좌관 대신 의정활동비를 주기로 되어 이 문제는 일단락되었다.그러나 시의회측은 여전히『돈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신분이 보장되는 보좌관제를 도입해 자료수집 등 의정활동을 제대로 하게해달라는 것』이라며 계속 불만을 보이고 있어 이문제는 언제든지 재연될 소지를 안고 있다.
지방의회와 지방집행부는 권한배분 뿐만 아니라 주요정책을 놓고도 끊임없이 힘겨루기를 해왔다.
광주시는 지난 6월 전문기관에 용역을 주어 1년여만에 마련한도시기본계획 변경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현행 도시계획법에 따라시의회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시의회는 4개월동안이나 의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곧 민선시대가 열릴 터이니 주요정책은 그때 결정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현안이 많은데 시의회가 발목을 잡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자 시의회는 할수 없이 의견을 제출했다.집행부와 의회의 갈등이 여론에 의해 정리된 셈이다.
집행부와 지방의회의 갈등은 광역자치단체 집행부와 기초의회간,광역의회와 기초자치단체 집행부간에도 일어난다.
광주시북구의회의 특위는 지난해 10월 광주시장을 고발키로 했었다.시가 관내에 쓰레기를 활용한 고체연료 생산공장을 허가해 주민들의 환경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였다.
결국 시장 고발을 의결하는 구의회 본회를 이틀 앞두고 해당특위와 시장과의 면담끝에 시가 사업시행을 유보토록 결정함으로써 갈등이 해소됐다.
그러나 허가를 받고 시설투자를 끝낸 민간회사는 어느 곳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이 피해를 떠안고 말았다.
이같은 지방의회와 집행부의 갈등이 심화된데는 갈등해결의 제도적 장치 부재도 한몫하고 있다는 지적이다.따라서 대안으로▲중요사안에 대한 사전협의 확대와 의무화▲중요사안에 대한 주민투표제도입등이 제시되고 있다.한양대 지방자치연구소 이 기옥(李己玉.
행정학)교수등은 또『현행 지방자치법상 의회쪽의 권한이 지나치게빈약한 것도 문제』라는 지적을 한다.따라서 의회의 권한을 보강하고 단체장의 권한을 줄여 양자간 균형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현행 법정의결 사항에 중요시책 대부분을 의결사항으로 추가하고,임의 의결사항을 적극 인정하는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외국의 경우 중요시책 사항.중요계약의 체결.기구정원등이 지방의회 의결사항으로 돼 있다는 점을 근 거로 든다.
[특별취재팀,정리=金基奉기자]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간에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를 꼭 병리적인 현상으로 볼 것은 아니다.건전한 의미의 긴장관계는 오히려 창조적인 역동성을 갖는다.의회의 기능중 집행부 감시의 비중이 큰만큼 긴장관계가 없으면 오히려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긴장관계가 지나쳐 양자가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을 때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지방의회는 한마디로 절름발이라고 할 수 있다.기본적으로 단체장에 대한 적절한 견제가 어렵게 되어 있다.
현재 지방의회의 권한은 지방자치법에 열거된 10여개에 불과해극히 제한돼 있다.지방의회가 실제로 지방자치의 주역으로 등장하기 어렵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간의 마찰.갈등이 대화와 타협에 의해 해결되는 쪽으로 진전되지 않고 더욱 심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앞으로 내년에 지방자치단체장 직선이 이뤄지고 나면 단체장의 정치적인 역할은 놀랄 정도로 커질 것이다.
지방의회는 상대적으로 약화돼 그나마 지금 갖고있는 기반마저 흔들릴 것으로 예상된다.따라서 이같은 현상을 충분히 보완할 의회의 법적 지위와 권한 영역의 확장이 있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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