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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곤혹·모욕, 참을까 복수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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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딜레마 해부하기
제임스 재스퍼 지음, 왕수민·전일휘 옮김
사이, 352쪽, 1만4300원

삶이 왜 이리 복잡한가 했더니 이유는 여기 있었다. 바로 딜레마(dilemma). ‘두 가지 이상의 선택 사항이 존재하는 상황’을 말한다. 딜레마에 빠지면 우리는 각 선택 사항에 따르는 위험과 비용, 잠재적 이익 등을 저울질해 한쪽을 결정해야 한다. 뉴욕시립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수시로 겪게 되는 일상의 딜레마를 37가지로 정리해 내놓았다.

딜레마의 종류가 참 다양도 하다. 최근 주가 등락에 마음 졸이는 ‘개미’투자자들은 ‘푼돈의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이미 투자한 푼돈에서 멈춰야 할지,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목돈을 투자해 더 큰 성공을 기대해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이 빠졌던 딜레마도 바로 이 ‘푼돈의 딜레마’였다. 이미 쏟아 부은 자원이 아까워 존슨 행정부는 승산이 낮은 상황에서도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결정했다. 당장 끝내면 손실이 분명한 반면 끝까지 버티면 혹시 성공할 가능성도 있으니 갈 데까지 가 본 그 심정이 이해도 간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빠지는 ‘복수의 딜레마’도 흔한 상황이다. 복수를 해서 쾌감을 얻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일단 참고 지나가는 것이 좋을까 갈등이 일어난다. 싸우거나 항의를 했다가 혹 두고두고 상처로 남을 모욕을 당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면 참고 물러나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복수를 해야 분이 풀리고, 애초의 목표가 뭐였든 복수 자체가 목표가 되는 경우도 많다. 다분히 감정적인 반응이지만 폄훼할 일은 아니다. 복수를 통해 얻는 쾌감이 그 어떤 기쁨보다 클 수 있고, 또 ‘정의’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우리 삶에서 곤혹스런 상황은 계속 이어진다. 목적 달성을 위해 반대파와 손을 잡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더러운 손의 딜레마’, 적에게 빼앗길 수도 있는 자원을 아예 없애버리는 게 현명할지 갈등인 ‘초토화의 딜레마’, 위험을 한 곳에 집중시킬지 분산시킬지 선택해야 하는 ‘바구니 딜레마’ 등.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딜레마에서 자유로운 순간은 없을 듯하다.

대선의 계절이다. 선택의 계절이니 딜레마의 계절이기도 하다. 단일화를 놓고 저울질하는 후보들,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야 할지 고민하는 정치인과 유명인사들, 그리고 유권자들 모두 각양각색의 딜레마에 시달리고 있다. 우세한 후보에 편승하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그에 맞서 독주를 막는 것이 좋은지 선택해야 하는 ‘밴드왜건 딜레마’, 상대방을 꺾 것을 우선할 것인지, 전리품 획득을 우선할 것인지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는 ‘경기자-전리품 딜레마’, 내부인을 만족시켜야 할까, 외부인을 만족시켜야 할까 고민하는 ‘야누스의 딜레마’ 등이다. 어쨌든 다들 19일 투표일까지는 딜레마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저자는 이런 딜레마에 대한 대처법으로 “우선 곤혹스러워하지 마라”고 충고한다. 딜레마가 존재한다는 자체가 인간에게 선택권이 있고 그 속에서 행동의 자유를 누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딜레마와 씨름하고 있을 때 그저 관습이나 직관을 따르기보다 자신이 선택을 하고 있음을 의식적으로 깨닫는다면 더 나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뾰족한 딜레마 탈출법을 제시하지는 못 하지만 이 책은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 그 실체를 알려주는 의미가 있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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