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칠레 FTA 국회 통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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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7개월 만에 통과됐다. 비준안 통과로 칠레는 물론 남미 전역의 수출시장 개척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반면에 국내시장 개방에 따라 농업 등 경쟁력 없는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해졌다.

한.칠레 FTA는 오는 4월 1일이나 5월 1일 발효될 예정이다. 국회가 이번 주 중 행정부에 한.칠레 FTA 비준을 통지하면 한.칠레 양국이 국내 절차가 완료됐다는 것을 상호 통보하는 절차가 남았다.

◇무관세 수출=FTA 발효 즉시 우리나라는 칠레산 배합사료.종우.양모.커피 등 9천7백여 품목의 관세를 철폐해야 한다. 칠레는 자동차.휴대전화.TV.컴퓨터 등 2천4백50개 품목의 관세를 없앤다.

우리가 즉시 철폐해야 하는 품목들은 대부분 이미 수입되던 것이어서 당장 국내 산업에 큰 영향은 주지 않을 전망이다. 반면 칠레에 대한 주요 수출품의 관세가 없어져 그동안 무관세를 무기로 우리 상품을 밀어냈던 미국.유럽.브라질산 제품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산업자원부는 칠레에 대한 수출 증가액이 3~4년 내에 약 7천만달러, 장기적(5~13년)으로는 최고 20% 늘어난 2억2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싱가포르.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의 FTA 협상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정부는 FTA를 통해 경제뿐 아니라 정치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해 국제사회에서 발언권을 높일 생각이다. 지정학적으로 위기가 상존하는 상황에선 우리나라의 입장을 지지해 줄 나라들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한.싱가포르, 2006년에는 한.일 FTA를 발효시킨다는 목표를 세웠다. 앞으로 중국.아세안과도 FTA를 맺어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를 만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FTA를 통해 수출시장을 넓히는 한편 경쟁력 없는 산업을 솎아내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의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게 정부의 복안이다.

◇농업 대책=정부는 앞으로 7년간 1조5천억원의 기금을 조성해 농민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학계가 추정한 FTA 피해규모(10년간 6천억원)의 세배 가량 되는 액수다. 정부는 지원금의 70%를 주로 과수원의 규모를 키우고 유통 체계를 바꾸는 등 과수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쓸 계획이다. 이번 협정에서 빠진 사과.배를 재배하는 농가에 지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칠레산 수입이 늘 것으로 보이는 포도의 경우는 영세농의 퇴출을 유도하기 위해 폐업 보상금을 줄 계획이다. 2천억원은 직접적인 소득 보전에 쓰인다. 큰 방향은 바람직하나 집행과정에서 얼마나 효율적이고 일관되게 사용되느냐가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농민들의 빚 부담도 크게 줄어든다. 정부는 농민들이 정부에 진 빚(정책자금)을 갚는 이자를 4%에서 1.5%로 이미 낮췄다. 또 농민들이 농협에서 개인적으로 빌린 돈(상호금융)의 상환 이자도 평균 8%대에서 5%대로 인하된다. 앞으로 10년간 1백19조원을 농업과 농촌에 투입한다는 중장기 계획도 제시됐다.

◇퍼주기 논란=지난해 7월 이후 정부가 쏟아낸 각종 농민 지원책들은 '무조건 버티면 얻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줬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당초 1조원 규모였던 FTA 관련 농촌지원 규모를 지난해 12월 1조5천억원으로 늘렸다. '연내 통과'목표에 매달린 결과다. 특히 상호금융 관련 이자 삭감은 추가로 들어가는 예산 2천억원은 제쳐놓더라도 불필요한 정부개입의 선례를 남겨서 두고 두고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사적인 금융거래에 정부가 개입해 시장의 질서를 흐트러뜨린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농협에선 대출관리를 제대로 안 하는 '도덕적 해이'가 나타날 수 있고, 도시빈민이나 신용불량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올해 쌀시장 개방협상이 타결되면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지원 요구에 시달릴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서진교 부연구위원은 "대외협상 못지않게 국내에서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농민단체가 아니라 농민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홍.김영훈 기자<hongj@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jongtak@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kgbo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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