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 "긍정의 힘이 날 일으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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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힘든 일도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웬만한 사람들은 모두 겪었거나 겪을 일입니다. 견디지 못할 힘든 일은 없어요."

50대에 접어들었지만 최근 '거위의 꿈'이라는 노래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인순이(50.본명 김인순)가 5일 서강대에서 강단에 섰다. 서강대 교목처가 크리스마스를 맞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를 초청해 특강을 연 것이다. 무대가 아닌 강단에 오른 김씨는 혼혈인이라는 편견을 견디며 가수로 성공하기까지 힘들었던 시절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담담한 목소리로 두 시간 동안 학생들에게 들려줬다.

어린 시절 인순이에게 꿈은 '살아남는 것'이었다. 태어나고 자란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의 경계만 넘어가면 모든 것이 벽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면전에서, 혹은 뒤에서 혼혈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을 참는 법부터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가수 생활도 순탄하지 못했다. 데뷔 초기 고수머리는 TV에 출연할 수 없다는 제작진의 말에 모자를 써야 했다고 한다. 출중한 노래 실력에도 불구하고 혼혈인이라는 이유로 국가 대표로 '도쿄가요제'에 참가할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밖에 졸업하지 못했지만 고졸이라고 거짓말을 한 사실이 뒤늦게 언론에 알려져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손가락질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제 그의 꿈은 "어떻게 하면 남을 도울 수 있을까"로 바뀌었다. 받은 사랑을 갚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꿈 전도사'로 나섰다. 최근 발표한 디지털 싱글앨범 타이틀도 '거위의 꿈'이다. 이날 특강 요청도 꿈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수락했다고 한다.

강연을 마친 그는 '거위의 꿈'을 불러 달라는 학생들의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열창을 마치고 강의실을 나오는 인순이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편견 때문에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긍정의 힘이다. 문제가 생기면 다른 사람들은 이것보다 더 큰 문제도 겪는다는 생각으로 버텨 왔다. 아끼는 반지를 잃어버리면 속은 타지만 누군가 나보다 더 필요한 사람에게 갔을 거라고 생각하면 괜찮아진다."

-강연에서 멋지게 늙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뜻인가.

"뭐든지 받아들이며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삶이 멋진 삶이다. 늙어 가는 것에 불평만 하지 말고 세월을 받아들이고 연륜을 받아들이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기 주름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자신과 수십 년을 함께해 온 훈장이라고 생각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최근 학력 위조 문제가 불거졌는데.

"나한테만은 비켜 갔으면 하는 일이 터진 것이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보도가 나가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이해해 줬다. 사람들이 너무나 따뜻하게 격려해 줘 오히려 몸에 기운이 쭉 빠지고 겁도 났다. 솔직히 아직도 밝힐 수 없는 거짓말이 너무 많아서…. 나는 고백할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거위의 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내 평생 단 한번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노래다. 단순히 화려함을 좇아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노래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직접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런 메시지를 받은 것 같다."

-꿈을 잃은 사람, 혹은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 달라.

"힘들더라도 지금을 즐겨라.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다면 직장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생각하면 된다. 지금 있는 삶을 즐기고 완벽하지 않더라도 후회 없이 열심히 하면 된다."

◆인순이=1978년 '희자매'로 가요계에 데뷔한 혼혈 가수. 57년 흑인인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84년 발표한 노래 '밤이면 밤마다'가 큰 인기를 끌면서 라이브 가수로 실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94년 결혼해 딸이 있다.

글=한은화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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